2008년 7월 추천도서를 묻는 후배의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언급했던 책들이다. 나는 책을 손 가는대로 읽는 편이라 짜임새 있는 독서가 부족하다. 좋은 책은 나눠 읽을 수록 가치가 커질 테니 이런 식의 정리 작업을 좀 해봐야겠다.


<동양 고전>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돌베개, 2004
오강남 옮김, 『도덕경』, 현암사, 1995
이세동 옮김, 『대학·중용』, 을유문화사, 2007
정민, 『다산어록청상』, 푸르메, 2007


신영복 선생님의 동양고전 강의는 원체 유명하니 길잡이 삼아 보면 좋을 듯합니다. 동양 고전 가운데 도덕경과 대학을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우선 선정했습니다. 일단 분량이 짧아서 좋거든요. 짤막한 글로 엮여졌다고 알려진 『논어』만 해도 완독하려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분량이라 저도 몇 번 실패했습니다. 수많은 주석서 가운데 쉽게 번역되고 가독성이 높은 책 위주로 골라 봤습니다. 형이상학적 내용이 가미된 『도덕경』이 좀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오강남 선생님이 옮긴 또 하나의 역작 『장자』를 권합니다. 1학년 국어작문(지금의 사고와 표현) 과제물로 『장자』 독후감 써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장자를 좀 더 꼼꼼히 읽고 독후감 개정판을 내보고 싶습니다.


『대학·중용』은 같이 합본된 경우가 많은데 중용이 알쏭달쏭하기 때문에 대학만 읽어보면 동양 정신의 정수를 맛보는 겁니다. 대학 해석을 두고 성리학과 양명학이 갈리게 되는데 잡글로 정리하려고 준비는 해놨는데 언제 완성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양명학이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던 조선 지성계의 편협함이 새삼 아쉽네요. 사실 옛날 교육 순서대로 하자면 『소학』을 먼저 보면 좋습니다. 그냥 명심보감 같은 느낌으로 우리나라 인물을 대상으로 편집한 『해동속소학』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윤호창 선생님이 옮긴 홍익출판사 『소학』 번역본이 가장 깔끔한 듯싶습니다.


정민 선생님이 편집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어록집은 그 시도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선정했습니다. 저는 한국 고전 국역과 더불어 선현들의 어록 혹은 언행록을 정리하는 일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어』 같은 어록이 우리나라라고 왜 없겠습니까. 이 책에 대해서는 상세한 서평을 써둔 게 있는데 익구닷컴에서 <더 많은 어록을 고대하며>라는 제목의 제 리뷰를 참조해주세요. 자매품(?)으로 정 선생님의 산문집인 『스승의 옥편』에 대한 리뷰도 <변화 속에 변치 않는>이란 제목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역사>
박원순,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한겨레신문, 1999
이태진 외,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푸른역사, 2005
이근우, 『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 인물과사상사, 2006
이덕일,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한겨레출판, 2008


박원순 선생님 책은 세기의 재판 이야기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에밀 졸라의 활약은 배우는 사람의 자세를 곱씹게 합니다. 『고종황제역사 청문회』는 2004년에 교수신문에서 벌어진 지상 논쟁을 정리한 책인데 전문적인 서술이 많지만 한 시대를 조명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어 좋습니다. 고종과 대한제국에 관해 엇갈리는 평가를 접할수록 혼란스러집니다. 고종이 제국민을 위한 제국이었다기보다 황제를 받들기 위한 제국을 원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 대한제국의 실정은 일제의 침략에 견주어 얼마나 나았겠냐는 투덜거림에 귀가 솔깃해지죠.


그럼에도 무능한 임금과 제국주의 침략세력과의 차이가 잗다랗다고 말하기에는 찜찜합니다. 일제의 폭압적 통치는 눈감은 채 통계적 수치를 통해 식민통치의 경제적 효용을 따지려는 시도는 논리적으로 무모할뿐더러 윤리적으로도 박절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미운 정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한 때 자신들의 임금을 위해 눈물을 흘렸던 당시의 백성들이 기억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제군주의 죽음이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를 잉태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사실(史實) 앞에 겸손해야 함을 담담히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근우 선생님 책은 역사적 기록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가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줍니다. 백제 성왕의 죽음을 둘러싸고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신라본기, 일본서기의 서로 다른 서술을 헤집는 한 대목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이야말로 합의되고 구성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덕일 선생님 책은 나온 지 며칠 안 되는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시대에 맞선 역사의 아웃사이더를 만나보세요. 패자의 역사에서 배울 때 우리의 미래는 풍요로워지리라 믿습니다.


<사회과학>
고종석, 『코드 훔치기』, 마음산책, 2000
김만권,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 동명사, 2001
김만수, 『실업사회』, 갈무리, 2004
이정전, 『우리는 행복한가』, 한길사, 2008


제 영혼의 스승인 고종석 선생님이 새천년 전후의 사회적 이슈를 살펴본 『코드 훔치기』는 요즘도 논술 교재로 애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고 선생님의 정치적 시평 모음집도 권할 만한데 『자유의 무늬』,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는 짧은 호흡의 칼럼을 위주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바리에떼』라는 책에서 친일 문제에 대해 정성스레 쓰신 글이 있는데 그 명문에 보답하기 위해 저도 그 부분에 대한 서평을 쓴바 있습니다. 역시 익구닷컴 검색 기능을 통해 ‘삼일절 새벽에 읽은 <식민주의적 상상력>’을 참조해주세요.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자유주의의 사상적 궤적을 고찰하는 책입니다. 대한민국에는 대기업의 자유를 옹호하는 분들이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자유지상주의자의 원조격인 미제스는 “자유주의가 인류의 물질적인 복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는 것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들을 경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외형적인 규제조치로도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고상한 것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확신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물질적 측면을 넘어 영혼에다가 물신을 주입하려 한다는 점에서 민망합니다.


김만수 선생님은 높은 실업률이 구조조정이나 경제정책으로 인한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경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임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 자본구성 변화를 세밀하게 분석해 가변자본의 상대적 감소가 완연함을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아직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나 우울한 이야기임은 확실합니다. 이정전 선생님은 행복경제학의 개념을 설파하시는데 이 책에 나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특히 인상 깊습니다. 일정한 생활수준에 다다르면 경제 성장이 개인의 행복, 사회적 후생 증가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일컫는데 대한민국은 이 역설이 성립하는 일정한 수준의 부에 다다랐을까요? 아직 갈 길이 멀까요?


최근 계간 <창작과 비평>에서 백낙청 선생님과 김종철 선생님이 논쟁을 나눴습니다. 전문을 찾아 읽지는 못했지만 백 선생님께서 “현시점에서 한국경제가 일정한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고 김 선생님을 이를 반박하셨습니다. 여하간 성장의 방향을 두고도 여러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경제성장 생각에 빠져있지만 그 성장은 순도가 높기보다는 불순물이 많이 섞인 잡스러운 녀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적당한 성장’이라는 개념은 사회구성원들의 합의하고 구성하는 것일 텐데 아직은 막막하네요. 박정희 방식과 다르게 경제를 운용하는 대안을 산뜻하게 제시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리즈물>
김영사에서 나온 <지식인마을> 시리즈 가운데 끌리는 대로 집어 잡아보세요. 두 인물을 비교 대조하는 형식인데 『사이먼 & 카너먼』, 『벤담 & 싱어』, 『공자 & 맹자』 등등 재미난 내용들이 많습니다. 개마고원에서 나온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그림으로 이해하는 경제사상』,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도 관심 있는 부분 찾아보면 재미날 듯싶어요. 논술용으로 펴낸 것 같은데 휴머니스트에서 펴낸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시리즈도 골라 읽어 볼만 합니다. 사상 부분에 관심이 있으시면 살림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도 기획 의도는 괜찮다고 하는데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해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마치며>
저는 비문학 청년(?)이라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미친 듯이 어려운 소설에 도전해보겠다는 분은 이남호 선생님이 해제를 단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보르헤스 선집을 읽어보세요. 저는 끝내 포기하고 말았지만 “문학작품의 의미는 텍스트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의도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해석 속에 있다”라는 구절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론가의 시각이 아닌 우리 자신만의 자유로운 관점을 내놓는 것은 늘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학기 중에 쫓기듯이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여유 속의 독서라면 이런저런 상상력이 만개할 것만 같습니다. 끝으로 제가 읽은 소설의 앞자리에 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제 횡설수설을 마칩니다. 즐거운 방학 재미난 책과 함께 하세요.^-^ - [無棄]


지금까지 지구상에 단 하나의 종교, 단 하나의 철학, 단 하나의 세계관이 독재적으로 자리잡아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신은 언제나 모든 억압에 맞서서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고, 정해진 틀에 따라 생각하는 것, 천박하고 기력없게 만드는 것, 모두 똑같이 작게 획일화하려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신적인 다양성을 단 하나의 분모로 통합하려는 모든 노력은 얼마나 진부하고 헛된 일인가! 주먹의 논리로 쟁취한 원칙에 따라서 인류를 선과 악, 경건한 자와 이단자, 국가에 충성하는 자와 배신자로 단순하게 흑백으로 구분하려는 노력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 슈테판 츠바이크, 『폭력에 대항한 양심』, 자작나무, 1998, 23쪽


<한 줄 요약>
개권유익(開卷有益)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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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4 11:1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익구 2009.02.23 22:3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 제 잘못입니다. 퇴고 단계에서 확인하지 못했네요. 글을 올린 곳에는 수정을 했습니다. 복 선생님께 실례를 했네요. 지적해주시지 않으셨으면 한참 뒤에나 발견했을지도 몰라요. 제 잡글들을 가끔씩 무작위로 오류를 수정하고 있긴 하지만 언제 찾아낼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냥 이 사람이 실수했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정성스레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지사항 같은 건 앞으로 더 주의해서 확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