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때는 말없이

사회 2009.03.24 03:44 |

어느 해라고 덜했겠냐만 내가 기억하는 2006년에는 추한 광경이 많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은 7·26 재보선 서울 송파갑 공천에 기자 성 접대와 세금 체납 전력이 있는 정인봉씨를 공천했다가 취소했다. 부랴부랴 새로 공천한 사람은 놀랍게도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했던 맹형규 전 의원이었다. 송파갑 보선은 맹형규씨가 그해 1월 서울시장 경선에 참가할 때 배수진을 친다는 의미로 사퇴해 치러졌다. 비례대표 의원이 사퇴해 지역구 의원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의원직을 자진 사퇴한 후보자가 그 자리에 다시 출마한다는 것이 너무 볼썽사나웠다. 아무리 누구를 앉혀놔도 당선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어찌 이렇게 일말의 염치가 없을지 처량했다. 이번에 코레일 사장이 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성북을 공천을 신청한 것도 두고두고 기억할 사건이다.


2006년 3월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한바탕 소란을 피운 최연희 의원은 사건 발생한지 4개월 만에 스리슬쩍 공개행보를 재개했다. 2004년 탄핵 때 의사봉을 잡았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직이 마지막 공직이라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2006년 6월 한나라당에 복당해 상임고문을 맡기도 했다. 부인이 4억 원의 공천헌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자 “조만간 정치적 거취를 밝히겠다”고 말했던 김덕룡 의원은 “대선에서 할 일이 있다”며 말을 바꿨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저렇게 구차하지 못해 안달인 모습을 보니 내 자신도 두렵다. 나는 얼마만큼 멈춰야 할 때를 잘 잡아낼 수 있을까.


남명 조식이 “선비의 큰 절개는 오직 출처(出處) 하나에 달려있을 따름이다(士君子大節 唯在出處一事而已)”라고 강조하셨듯이 공인일수록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잘 헤아려야 한다. 기왕이면 자유의사로 이뤄지고, 가능하면 시대정신에 대한 승복이어야 가치가 빛난다. 은퇴를 선언했던 정치인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그리 우아하지 못하다. 2004년 17대 총선 때 한나라당 텃밭인 서울 강남을 지역구를 스스로 포기해 아름다운 퇴장이라 칭송 받던 오세훈 전 의원이 5·31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뛰어들어 당선됐다. 달랑 4년만 금배지 맛을 본 초선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해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그다. 서울 강남 을에서 쉽게 재선의 길을 갈 수도 있었던 달콤한 유혹을 저버린 그에게 설레지 않았을 사람이 누가 있었으랴.


당시에도 이미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았으나 그는 시종일관 부인했다. 그러나 역시 권세가 좋긴 좋은 모양인지 몇 번의 권유를 마다하지 못하고 그는 헐레벌떡 돌아왔다. 오세훈씨는 “(불출마 선언으로) 호감을 얻었지만 이를 밑천으로 정치적 도약을 노릴 만큼 미련치 않다”던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는 서서히 잊혀지기보다 승리자의 영광을 택했다. 그가 환멸을 느끼며 떠났던 정치판이 많이 바뀌었다기보다 그가 더 바뀐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한나라당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네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기야 오세훈 시장 탓만 할 건 아니다. 정치인이 은퇴를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에서 패한 다음날 정권타도 투쟁을 선언하더니 1990년 전격적으로 3당 합당을 해버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2년 대선을 패배하고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가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씨는 불복하고 대선에 출마했고, 2002년 민주당 후보 경선 때도 음모론을 제기하며 탈당하는 등 어지러운 행보를 보였다.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선에 출마했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있다. 그가 요즘 간간이 보여주는 총기에도 불구하고 울림이 반감되는 이유가 지난날의 말 바꿈과 관련이 있을 게다.


2004년 총선 당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10선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비례대표 1번을 받아들던 김종필씨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산(西山)을 붉게 물들이며 떠나고 싶다”라는 노욕에 빠졌지만 그리 아름답지 못한 저녁놀이었다. 민망하게도 그의 아호는 운정(雲庭), 구름의 자유로움을 좋아해 지었다고 한다. “멈출 곳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 可以不殆)”라고 할 때 知止는 소극적 개념이 아닌 적극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갈 시간이다(it's time for me to go)”라고 연설을 마무리하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승복 연설에 군침만 흘릴 필요는 없다. 드물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 당선 영순위로 꼽히던 이원종 충북지사는 3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고 소속 정당을 탈당했다. “적절한 시기에 명예로운 퇴장은 오랜 소망이었다”며 “공을 이뤘으면 몸은 떠나는 것이 하늘의 도”라는 노자의 ‘공수신퇴천지도(功遂身退天之道)’라는 문구를 꺼내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은퇴하면 그림자를 남기지 말아야 하는 법”이라는 그 마음자리를 좇고 싶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먼저 사의를 표명했느냐는 질문에 “떠날 때는 말없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제 때 떠난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해도 좋으리라. 자신의 아름다운 퇴장을 자랑스레 말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57세의 이른 나이에 정계를 은퇴하며 “떠나야 할 때를 넘겨 머물기보다 남들이 머물라 할 때 떠나겠다”라고 말한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의 뒷모습은 얼마나 위풍당당했겠는가. 나는 공인들에게 얼른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게 아니다. 돌아오는 자들의 식언(食言) 릴레이가 식상하다는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떠날 때는 말없이’의 미덕보다는 ‘돌아올 때는 말없이’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돌아오는 사람은 이어지겠지만 그 멋쩍음을 미사여구로 분칠하지 말기 바란다. 물러났을 때의 그 견결한 마음을 실천하려면 말을 줄이고 더 많이 노력하느라 바쁘실 테니 말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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