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의 ‘세계 3’에 대한 논문들을 엮은 『객관적 지식』이라는 책이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관계로 여러 선생님들의 글을 참조해 이해해보았습니다.


일전에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는 포퍼의 저서가 출간된 적이 있다. 포퍼는 유기체를 목적추구적이라기보다는 문제해결적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는 문제나 문제상황이 감각기관의 인식보다 선행한다고 보며, 우리의 감각기관은 문제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이나 동물의 목적이 특정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생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통한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부터 발전한 것으로 보는 셈이다.


가령 어떤 동물이 물을 마시려고 풀숲을 뚫고 갔다고 할 때, 다른 동물은 앞선 동물의 발자국을 따라 좀 더 쉽게 물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최초의 동물이 특별히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길이 넓혀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계획하지 않은 귀결이다. 포퍼는 언어나 제도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포퍼는 문제를 과학 더 나아가 우리 삶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방법을 “문제(Problem 1)→잠정적 이론(Tentative Theory)→오류 제거(Error Elimination)→새로운 문제(Problem 2)”로 도식화한다.


오류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비판적인 토론과 경험적인 테스트가 수행되어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 2는 문제 1보다 좀 더 진리에 가까운 객관적인 지식이 된다는 논리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성장한다고 이해하면 될 듯싶다.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절대적 가치로서의 유토피아를 추구하면 닫힌 사회로 가게 된다며 비판한 내용을 상기해보면 좋겠다. 그의 사회철학인 ‘점진적 사회공학’의 요체는 결국 삶이 문제해결의 연속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해결에 적합한 사회는 결국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하는 열린 사회라는 데까지 이어진다.


객관적 지식의 성장을 주창하는 포퍼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 세계 이론’을 제시한다. 포퍼는 물질의 세계인 ‘세계 1’, 그리고 주관적 마음(정신, 의식)의 세계인 ‘세계 2’와 구별되는 ‘세계 3’을 고안한다. 객관적 사상의 세계, 마음의 산물이면서도 그 인식주체와 독립해 존재하는 세계 3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상, 언어, 윤리, 제도, 과학, 예술 등을 설명한다. 세계 1은 시공간에 있는 물질의 세계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세계 2와 세계 3의 구별에 좀 더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이 이론의 특성상 세계 1의 정의는 물리적 속성이라는 측면이 부각되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사실 포퍼 자신도 세계를 반드시 세 가지로 분류해야만 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는 않는다. 스스로도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 편의상의 문제라고 보고 예술작품은 세계 4에 속하는 것으로 봐도 괜찮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1, 세계 2, 세계 3이 시간의 순서대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물리적 세계가 가장 분명하게 실재한다고 보는 것은 딱히 더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다. 포퍼는 의식의 출현은 생명현상에서 진화한 현상이라고 설파한다.


다시 말해 모든 유기체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계 1의 생명체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활동이 세계 2를 낳게 된다. 세계 1이 세계 2를 출현시켰지만 세계 2가 출현한 다음에는 자신을 출현시킨 세계 1에도 작용하여 변화시키는 모습을 두고 세계 2가 세계 1과 상호작용한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관계는 세계 2와 세계 3에도 적용되어 세계 3이 세계 2에서 출현하지만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영역을 구축하며 세계 2와 상호작용한다. 포퍼는 세계 3이 세계 2를 매개로 하여 세계 1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가령 세계 3에 속하는 설계도나 각종 이론들이 세계 2에 속하는 건축가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해보자. 건축가는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땅을 얼마나 파고, 벽돌을 얼마나 쌓을지를 정해서 세계 1인 건축물을 만든다. 이처럼 세계 3은 ‘세계 2에 의한 산물의 세계’로 정의해볼 수 있다. 건축가가 참조한 세계 3의 이론은 결국 세계 2의 영역에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포퍼는 세계 3과 우리 자신이 상호 작용해서 객관적인 지식의 성장을 낳는 것은 동식물의 진화 같은 생물학적인 성장과 유사하다고 역설한다.


포퍼는 우리가 창안했지만 우리가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세계 3에 대한 예시로 자연수를 언급한다. 자연수는 인간의 창안물이지만 그 자신의 자율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예로 소수(素數)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소수의 존재는 인간의 의식인 세계 2에는 존재하지 않고 세계 3에 존재하다가 발견된 것이다. 소수가 수학자들에게 발견된 이후에는 세계 2와 세계 3 모두에 존재하게 되었다. 덧셈이나 곱셈은 인간이 발명했지만 교환법칙, 결합법칙, 분배법칙은 의도하지 않은 발견인 것도 비슷한 사례다.


세계 3은 그 기원에 있어서는 인간의 산물이지만 일단 이론이 존재하게 되면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갖기 시작한다. 이론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귀결을 산출하며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낸다.
One may say that World 3 is man-made only in its origin, and that once theories exist, they begin to have a life of their own : they produce previously invisible consequences, they produce new problems.
- K. R. Popper and J. C. Eccles, The Self and Its Brain(1977)


인간 정신의 산물들의 세계인 세계 3이 일단 존재하게 되면 그것을 생산해낸 인간과 분리된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세계 3은 세계 2에서 파생되었으되 예기하지 못한 논리적 귀결들과 문제들로 구성되는 자율적 영역이라는 것이 포퍼 주장의 핵심이다. 이런 양태를 예기치 않게 불시에 나타난다는 뜻에서 창발적 진화론(emergent evolution)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의도치 않은 귀결, 인식주체를 벗어난 독자적인 발전과 전개는 세계 3의 자율성을 논증한다.


정리하자면 주관적인 인식의 세계인 세계 2에서 객관적인 인식의 세계인 세계 3으로 나아가는 인식의 진화론에 대한 논증이야말로 포퍼가 애지중지했던 객관적 지식의 존재에 대한 논거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산출한 지식이나 이론 역시 오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식은 비판에 열려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인 면모를 지닌다. 포퍼는 세계 2와 세계 3을 구별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객관적 의미에서의 지식은 인식하는 자가 없는 인식이다. 그것은 인식 주체가 없는 지식이다.
Knowledge in the objective is knowledge without a knower: it is knowledge without a knowing subject.
- K. R. Popper, Objective Knowledge : An Evolutionary Approach(1972)


세계 2와 세계 3의 구별은 획기적이다. 이에 따르면 어떤 이론이나 지식을 말하는 사람과 그가 내놓은 이론, 지식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객관적 지식은 어떤 사람의 행태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퍼는 말에 대한 비판과 사람에 대한 비판을 구분해야한다고 설파한다. 비판과 토론에서 누가 주장했는가보다 어떤 주장을 했느냐에 주안점을 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인 것이다. 이 전환은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의 ‘주장’을 동일시하지 않는 혜안을 선물해준다.


자신의 그른 점을 지적하는데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건설적인 토론을 인신공격으로 제멋대로 오해하고 물타기를 하는 사람은 비겁하다. 주장 자체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인간 됨됨이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사람=그 사람의 말과 글‘이라는 등식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포퍼는 과학의 객관성은 과학자 개인이 객관성을 갖추려는 시도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친구와 원수 사이의 협동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객관성은 자기 혼자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 속에서 섞이고 스미면서 만들어진다.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견을 나누고, 비판을 가한다.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주의주장을 없애는 길은 그 주의주장의 제창자와 추종자를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주의주장 자체의 허실을 가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떤 주장과 그 주장을 한 사람을 동일시해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주장을 묵살했다. 포퍼는 잘못을 통해서 배우려는 자세와 남을 함부로 단죄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점검하는 태도를 주문한다.


예송논쟁이 한창일 때 서인인 송시열에 대항했던 남인 논객 윤휴가 숙종 6년(1680) 억지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약을 마시기 직전에 “조정이 어찌하여 선비를 죽인단 말인가(朝廷奈何殺儒者云)?”라고 외친 것은 의미심장하다. 당쟁이 당초 취지에서 틀어져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했던 참담함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려는 이상이나 신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아도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 세계 천주교 역사에 유례없는 극심한 박해가 자행되었다. 공서파(攻西派)의 강경 대응 주문에 정조는 “사교(邪敎:천주교)는 자기자멸할 것이며 정학(正學:유학)의 진흥에 의해 막을 수 있다”라고 탄압에 반대했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한 개명군주의 바람과는 달리 정조 사후에 천주교도에 대한 혹독한 탄압이 이어졌다. 그러나 교조화된 성리학의 답답함을 서학으로 풀게 된 이상 수천의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선교사에 의한 전파보다 현지인들의 자발적인 수용이 강한 한국 천주교 보급은 사대부의 무능한 통치에 신물이 난 백성들의 저항이었다.


홍경래가 최후로 버틴 정주성이 관군에 함락되면서 2천9백83명이 사로잡혔을 때 열 살 이하의 남자 224명과 여자 842명을 제외한 1917명을 모두 처형했다는 끔찍한 기록이 떠오른다. 지역 차별을 반성하지 않고 피로써 잘못을 감추려했던 역사의 비극이다. 어디 그뿐인가. 장보고에게 비수를 꽂는다고 신라 골품제의 비효율성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만적을 강물에 던진다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육신을 거열형에 처한다고 해서 수양대군의 찬탈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봉준을 죽여도 사람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이 식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없애 그 사람의 이론과 사상을 손쉽게 정리하는 야만을 저지르기 힘든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사람을 쳐내는 광경을 목격한다. 김제동, 진중권, 정연주, 이동걸, 황지우, 신태섭 등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명박 정권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석연치 않은 모양새로 일터에서 쫓겨난 분들을 열거하려니 화가 난다. 비판을 감내하지 못하고 다양성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다.


세 세계 이론은 그 사람이 내놓은 지식과 인식, 내뱉은 말과 글을 비판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고 열린 세상을 만든다. 세계 3은 덜 폭력적인 문화적 진화를 바라는 희망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가수 김민기는 “내가 만든 노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났고, 노래란 향유하는 사람들 나름의 창조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자신의 노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무덤덤하다고 밝혔다. 이 말처럼 세계 3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되는 지식들을 모두 자신의 소유인양 착각하지 않는 겸손함을 가져야겠다.


세계 3이란 아이디어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정직하게 경쟁하되 겸허하게 수용하고 깨끗하게 승복하라는 깨달음을 준다. 사람을 원망하기는 쉽지만 그 사람의 생각을 반박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드는 일이다. 세계 2와 세계 3을 분간할 수 있다면 우리네 삶은 한결 넉넉하고 너그러워질 것이다. 포퍼의 명언으로 맺는다. “내가 틀릴 수 있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 그리고 노력하면 우리는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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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군 2010.03.22 17:2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 최근에 나도 포퍼의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역시 이런 글이 올라와있었네 ㅋㅋ 세계3은 변치않을진대 그 세계를 해석하는 차이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세계2에서의 지지부진한 논쟁이 이어지는 것도 그렇고, 그 차이가 세계1의 물질문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안타까워. 역으로, 우리가 한 푼 더 벌기 위해 아둥바둥 하기보다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아웅다웅 하기보다 세계3을 보다 풍요롭게 이해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텐데.

    • 익구 2010.03.23 23: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마도 직장인 중에서 너처럼 폭넓게 책을 읽는 경우도 드물 듯싶다. 포퍼가 세계 3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고 생각해. 특히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잠시 맡고 계신 분들이 경청할 점이 적잖은 듯싶다. 세계 2에서의 논쟁이 일견 지지부진해도 그것이 세계 3을 풍족하게 하는데 이바지한다고 넉넉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아직은 부족해. “글은 그 사람과 같다文如其人)”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부정적으로만 발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네. 암튼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소유물에 우리가 소유 당하지 말아야겠지(물론 세계 3에서는 우리의 소유물조차 아니라고 설파하지만 뜻은 통하는 듯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