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티의 추억

잡록 2010.03.23 23:39 |

2004년 11월 5일~6일 현대성우리조트
2005년 4월 1일~2일 강촌
2006년 3월 31일~4월 1일 대성리
2007년 3월 23일~24일 우이동
2008년 4월 4일~5일 우이동
2009년 3월 20~21일 우이동


대학교에서 반 활동을 시작하고부터 참석한 총엠티이다. 2005년부터는 총엠티가 1회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해마다 빠짐없이 참석했다. 나도 매번 시간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쫓아다닌 것을 보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대학원 입학 전에 동기 분들과 함께 갔던 엠티에서도 엠티비를 수납하고, 답사를 가고, 장을 보는 일을 거들었으니 엠티와의 인연이 질긴 듯싶다. 내가 즐기는 일이라고는 고작 술을 나누며 담소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05년 엠티 때는 후발대로 온 04학번들을 제치고 아예 선발대로 먼저 도착해서 좌중을 놀라게 했다. 선배들은 보통 체면을 세우느라 일부러 늦게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배는 늦게 갈 권리가 있지만 우리 민법 제2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듯이 그 권리는 남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갓 선배가 된 친구들에게 괜히 늦지 말고 제때 가서 새내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곡진하게 부탁하는 게 주제넘은 참견이 아닐까 내 발밑이 늘 불안하다. 같이 노력하자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여주시길 희망한다.


06년 엠티 때는 후배들과 함께 후발대를 가게 되었는데 청량리역에서 기차표가 모자라서 무임승차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내가 다음 기차를 기다리든가 아예 엠티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시외버스를 타고 엠티 장소로 향했다. 나는 선배의 권위를 이용해 후배들을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끌고 다닌 셈이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을 덜 어기는 게 민주시민의 덕목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가 좀 넘쳤던 것은 아닐까 늘 헛갈린다.


3월 22일 월요일에 민형기 헌법재판소 재판관님의 특강을 들었다. 민 재판관님은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술집을 함께 찾던 친구들이 무단횡단을 할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하셨다. 물론 모범답안은 친구들을 모두 이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다. 민 재판관님은 당신께서도 그 모범답안이 자신 없다고 하시면서 횡단보도를 안 건너고 갈 수 있는 술집을 제안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지난날의 나는 모범답안을 거의 지켰다. 그런데도 마냥 뿌듯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규범을 어떻게 준수하느냐는 참 어려운 문제다.


07년 엠티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우이동을 향했다. 나는 우이동이 적잖은 단점이 있으나 선배들이 뒤늦게라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도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이동행을 주창했다. 이때부터 우이동 엠티가 시작되었고 나는 지금도 모종의 책임의식을 느낀다. 사온 고기가 많았던지 밤새 삼겹살을 구웠는데 그 불판의 용사들이 그립다. 개중에는 어느덧 복학생 아저씨(?)가 된 친구들도 있다. 약한 불 때문에 한 시간 가까이 아침 라면을 끓이던 인내의 달인들도 아마 더 멋진 사람이 되었으리라.


08년 엠티가 열리던 날에는 금융론 과제를 하느라 금산분리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4학년이던 나의 마지막 경영대 전공이어서 애정을 쏟은 과목이었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고 말았다. 근처에서 머물던 04, 05학번들을 규합해 택시 세 대에 나눠 타고 위풍당당하게 후발대를 꾸렸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졸업생으로서 참석한 09년 엠티는 집에다가 야식을 좀 먹고 온다고 말씀드리고 참석했다. 실제로 야식을 먹긴 먹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지만 야식을 조금 멀리서 조금 길게 먹은 셈이다.^^;


이번 금요일에 어김없이 학부 총엠티 기간이 돌아왔다. 문득 지난 엠티의 추억들을 돌아보니 가슴이 짠하다. 내가 몸 담았던 과반은 규모가 비교적 큰 조직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편이다. 삼월에는 북적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반보다 더 즐겁고 보람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가게 된다. 나는 내 자신이, 그리고 내 둘레 친구들이 마음을 재까닥 옮기기보다는 하나둘 떠나가고 난 빈 자리를 늦게까지 어루만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번 금요일 밤에는 우이동을 거닐 듯하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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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별이 2010.03.25 23:3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러니까.

    다들 널부러진 술자리에서 실신한 녀석들 지갑이랑 휴대폰 흘리지 않도록 챙기고, 택시 태워보낼 애랑 같은 방향으로 가는 챙겨줄 애를 섭외하면서, 먹고 죽은 애들이 실려가서 빵꾸난 회비를 어떻게든 메꾸고 늦은 새벽에서 후배녀석 부축하며 자취방에 왔더니 같은 과 친구녀석이 이미 내 방에서 자고 있는 아햏햏한 시간들을 부드럽게 웃어넘기는 좋은 사람들에게 고맙단 인사 한번 제대로 못한게 아쉽네.

    • 익구 2010.03.28 23:4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형님의 다정다감함이 느껴지는 추억담(어쩌면 무용담)입니다.^^ 월요일을 앞두고 있는 일요일 밤은 늘 애가 탑니다. 특히 주말에 한바탕 놀고 오니 그 재미난 시간이 빨리 가서 아쉽네요. 애주가들이 물아일체를 패러디 해 주아일체(酒我一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저는 ‘주간(酒間)’이라는 말을 종종 씁니다. 좀 과장을 보태면 제 삶은 술자리와 술자리 사이에 끼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 술자리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해 또 알차게 지내봐야겠습니다. 잠시 술잔을 내려놓은 시간 동안 좀 더 그윽해져서 형님과 술잔을 다시 나눌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2. 한별이 2010.03.29 00:1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내가 그랬다는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수고와 고마움을 알아볼 눈이 없었던 당시의 미숙한 내가 너무 아쉬워서 한 말이야. ㅋㅋ

    • 익구 2010.04.22 23:3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술자리의 선행이나 미담은 잘 전해지기 힘든데... 그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분들을 뵈면 功成而弗居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즉 공을 쌓아도 그 공을 주장해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 그 애틋한 마음자리를 저는 잘 못 좇아가고 있습니다.

  3. 2010.03.30 13:37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익구 2010.04.22 23:4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새로운 거처에서도 예의 그 넉넉한 웃음을 퍼뜨리시면서 즐겁게 보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간 감사한 점이 많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갚지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 저도 종종 안부 여쭙겠습니다. 늘 건승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