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1주기를 차분하게 보냈다. 한 달 전에 헌법총론 예습을 위해 탄핵심판 헌재결정을 읽다가 IPTV를 이용해 1년 전 영상을 다시 찾아본 관계로 너무 일찍 추모를 시작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노무현) 탄핵소추의결서를 보면 국가의 지도자에 대한 예의는커녕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글을 함께 써 내려갔거나 동조했던 이들이 지금은 국민을 향해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던 22일 밤 자정을 전후해서 내 착잡한 마음을 나눠줄 분들에게 무작정 문자를 보냈다. 늦은 시간에 연락을 드린 무례함을 용서하고 답문을 보내주신 분들이 적잖아서 송구스러웠다. 어느 한 분은 내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문자를 보내자 “부끄럽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고쳐야 할 듯”이라는 답문이 왔는데 가슴이 짠했다.


작년 이맘때를 돌아보니 둘레 사람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슬픔을 나누자는 뜻이었기도 하지만 내가 걱정되었다는 분들도 있었다. 서거 속보가 막 전해지던 때에 전화기를 꺼두었던 터라 남들보다 늦게 소식을 접했다. “하 이게 뭐니”라는 문자의 뜻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기분이 참 무거웠다. 물음표까지 생략한 “우냐”라는 문자에 답문을 어떻게 보냈는지 헛갈리지만 아직은 안 운다고 보냈던 것 같기도 하다.


2009년 5월 24일 선배님께서 낮술을 사주셨는데 선배의 물기 어린 눈을 보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덕수궁 돌담길에 이르렀을 때 선배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훌쩍거렸다. 선배는 내가 우는 걸 보고 울었다고 회고하셨는데 아마 선배의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너무 기력을 소진했던지 줄을 기다리다가 결국 분향을 하지 못했고 며칠 뒤에 조계사에 가서 간신히 문상을 했다.


2009년 5월 25일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구로부터 “지금을 원하나 태릉입구로 튀어감?”라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고 화랑대역 근처에 사는 친구까지 포함해 세 사람이 모였고 한참을 걷다 중화역 근처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당시에 나눴던 대화를 좀 더 기억해내고 싶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별 말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집 앞까지 찾아와준 그 친구 덕분에 큰 위로를 얻었다. 다시금 고맙다.


그 때 당시 여러 추모 칼럼이 있었지만 지금 언뜻 떠오르는 건 육상효 선생님이 한국일보에 기고하신 <그는 우리에게 누구였을까>라는 글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담담히 서술하는 글인데 나도 그 당시에 이런저런 말을 토해냈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09년 5월 29일 영결식장에 함께 있었던 친구에 따르면 “잘 가요”라는 말을 넋두리처럼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이) 나쁘지 않았어”라는 말도 적잖이 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내가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혹자는 정치인 노무현보다 인간 노무현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정치인 노무현도 좋아했다. 물론 그에게 완벽함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을 때 했어야만 하는 일, 할 수 있었던 일, 하면 좋았던 일 가운데 몇 가지를 해내지 못했다. 공인으로서 마땅히 비판받을 점이다. 그래서 때때로 실망하고 서운했지만 그런 감정보다 한두 뼘쯤은 더 좋아하고 아꼈던 분이었다.


덧없는 세월은 흘러 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라지만 노무현에게 아쉬웠던 점을 메우면서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잡아끌 분을 가까운 시일 내에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멍멍하다. ‘또 다른 노무현’이나 ‘더 나은 노무현’이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체념 때문에 지금까지도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대한민국에 인재가 없지는 않을 테니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일꾼들을 키우고 응원해야겠다.


집단으로서의 유권자는 영원한 면책특권을 누린다. 그 면책특권은 민주주의의 과실이다. 나는 민심이 무조건 위대하다는 명제에 동감한다. 김제동님께서 시사IN 인터뷰에서 “사람은 틀릴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신 말씀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민심은 천심이라고 할 때 그것은 맹목적 다수결주의가 아닐 것이다. 변하는 민심처럼 시대정신도, 그 사회의 지배적 조류도 바뀌게 마련이라면 오늘날 일시적 다수파가 된 분들이 잠시 맡은 제한된 권한을 삼가며 쓰는 자세를 갖추시길 바란다.


『회남자(淮南子)』가 출전인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는 고사성어 가운데 이야기의 전체 내용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편이다. 새옹지마는 부푼 희망을 노래하기보다는 차분한 평상심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전해지는 것 같다. 새옹지마와 비슷한 표현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을 꼽기도 하는데 나는 뜻빛깔이 좀 차이가 난다고 본다. 새옹지마는 오히려 삶의 변화무쌍함을 논한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듯싶다.


변화무쌍은 무상(無常)이란 말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포개지지는 않는다. 무상에는 늘 변한다는 뜻과 더불어 덧없다는 뜻도 있으니까 말이다. 여하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새기자면 삶이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지방선거가 지방정치 독점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거나 정의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옹지마의 이치라고 해도 좋겠다. 변방으로부터 노무현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이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길 고대한다. - [無棄]


변방 어르신의 태연자약함을 좀 배우겠다는 뜻에서 새옹지마 번역문을 첨부한다. 직역 위주로 번역을 손질한 탓에 문장이 어색하니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길...


재앙과 복이 바뀌어서 서로 생겨나는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다.
夫禍福之轉而相生, 其變難見也.


변방가에 가까이 사는 사람 가운데 점을 잘 치는 자가 있었는데,
近塞上之人, 有善術者,


그 말이 까닭 없이 도망가서 오랑캐 땅에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로했다.
馬無故亡而入胡. 人皆弔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복이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爲福乎?”


여러 달이 지나서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거느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축하했다.
居數月, 其馬將胡駿馬而歸. 人皆賀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화가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能爲禍乎?”


집에 좋은 말이 많아지자 그 아들이 말타기를 좋아하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위로했다.
家富良馬, 其子好騎, 墮而折其脾. 人皆弔之.


그 노인이 말하길, “이것이 어째서 복이 될 수 없겠는가?”
其父曰, “此何遽不能爲福乎?”


1년이 지나서 오랑캐들이 변방에 크게 쳐들어 와서 건장한 청년들이 활시위를 당겨서 전쟁터에 갔다.
居一年, 胡人大入塞, 丁壯者, 引弦而戰,


변방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은 자가 열에 아홉이었다.
近塞之人, 死者十九.


이 사람은 홀로 절름발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자(父子)가 서로 보존할 수 있었다.
此獨以跛之故, 父子相保.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변화는 다함이 없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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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본준 2011.01.23 03:4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위의 글을 저에 생각에 견주어 세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글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 (공대졸업하고 직장생활 17년째 42세 중년의 청년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해 두죠)이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정도를 가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해두죠

    정권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보인 행태는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겠죠

    모두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인신의 틀 안에서의
    최선일뿐~~~

    천심(민심)에게 묻지 않는다면
    그들의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영국 속담인가를 빌려서 말하면

    1. 미친 개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 ?)
    2. 걷잡을 수 없는 홍수 (당할 수 없어 피하는 것이 상책인 사람들, 전쟁 중의 군사들?)
    3. 스스로 지혜롭다고 믿는 사람들 (정치인, 학자, 언론인, 경제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 중에
    서 다채로운 사회 경험이 부재한 상태에서 책을 열심히 보아서
    아전인수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인품과 인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

    을 경계하고 스스로도 이러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라 하였으니
    오로지 경계할 일입니다

    노무현 선생의 일이야 무어라 말로 형언할 길이 없지요

    왜 주변의 사람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였는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이 없는 것을

    노 선생은 어릴 적 독하게 공부하여 그 막장을 벗어났으나
    한 때의 쾌락을 뒤로 하고
    다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백의종군과 남이 가지 않는 길로 달려 가셨으며
    그것이 백성의 마음을 얻어
    대권을 얻었던 것입니다

    많은 서민의 마음이야
    어찌 그러한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요 ?

    그는 권좌를 내려오는 길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무하였고
    또한 슬기롭지도 못하였으며
    그 거센 역풍과 역공에 대해서도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측면이 큽니다

    권좌에 있을 때는
    거센 홍수와 미친 개들이 공격을 피하지 못하였고
    권자에서 내려와서는
    제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가볍게 받아 넘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인정해 주지 그랬어요

    그래도 누가 그것을 탓하겠어요

    세상은 한없이 혼탁하고

    다산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루 말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옛 어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18년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울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와 슬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충무공의 사례는 또 어떤가요 ?

    탁상공론과 당쟁의 회오리에 걸려서

    죄없는 죄인이 되었지만

    끝내 하늘이 도와 (민심은 절대 그를 버리지 않았으므로)

    민족을 구원하는 성인의 경지에 오르셨잖아요

    공인의 생명이야

    만인의 것인것을

    그것을 스스로 버리셨다니

    해도 해도 너무 잘못하신 것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리 우격다짐으로 적는 것이니

    반대편의 이리떼 승냥이떼야

    원래 말귀가 막힌 자들이니

    무어라 하리요

    오호 통재어라 !

    앞으로는 이에 대한 사례 연구라도 해야지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한 법이라도 생겨야 하는 것은 아닐지

    국가의 운영 시스템을
    선진화한는 쪽으로
    누가 바꿀 수 있을까요 ?

    결국은 또 한번
    민심이 움직여야 할 때가 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달리
    방법이 정녕 없기에~~~ ~~~~~

  2. 구본준 2011.01.23 03:4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위에서 인신은 인식으로 바꿉니다

  3. 구본준 2011.01.23 03:4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권좌에 있을 때는
    거센 홍수와 미친 개들이(의로 고침) 공격을 (효과적으로) 피하지 못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