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시행세칙 55조 1항(전체 투표율이 50% 미만일 경우 재투표를 실시한다)을 삭제하자는 최익구 경영대 학생회장의 수정안에 대해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최 회장은 “현실상 50% 이상 투표는 무리가 있다”며 “무리하게 선거 마지막 날 학생을 동원하기보다 50% 미만일 경우에도 개표를 가능하게 하자”라고 말했다. 이에 조영관 정외과 학생회장은 “50% 이상 투표라는 것은 형식적 요건이 아니라 최소한의 대중의 지지”라고 말했다. 위 수정안은 찬성 3명, 반대 37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다.
- 고대신문, 2004. 11/01 1491호 2면 기사 中


생각지도 않게 고대신문에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압도적 부결로 끝난 사안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기사를 실어주신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다소 전달이 제대로 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기자 분께서 수정안의 내용을 정확히 보시지 않아서 다소 오해를 하신 모양이다. 나는 현실상 50% 이상 투표가 무리가 있다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았다. 50% 투표율 규정이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50%가 안돼서 지루한 연장투표를 하는 것은 현상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원칙의 문제였다.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 개정 발의]
발신: 37대 경영대 학생회, 경영 A반 학생회
수신: 37대 중앙운영위원회, 전체학생대표자회의

<개정 대상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
제55조 (재투표)
제1항 전체투표율이 50% 이상이 안될 경우 재투표를 실시한다.
제2항 재투표는 일주일 안에 실시하며 선거운동은 하지 않는다.

<현행 선거시행세칙의 문제점>
유권자의 반 이상이 참가한 선거에서 뽑힌 당선자에게 대표성을 확보해주려는 취지는 충분히 동감한다. 그러나 과반수 투표율로 형식적 대표성을 갖추려고 하는 것은 투표소로의 동원, 좀 더 넓게는 정치적 동원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선거권, 피선거권은 총학생회 회원의 권리이지 강제된 의무는 아니다. 50% 투표율 규정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 즉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제약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미 제54조 재선거 조항에서 투표참여자의 의사가 오차 없이 반영되도록 한 것이 규정되어 있고, 개정 원안의 제38조 제1항에서 투표일을 2일에서 3일 이내로 변경한 만큼 제55조의 재투표 조항은 개정을 검토할만하다.

학생회 선거에서 기권하는 행위는 개인이 선택하는 영역이다. 학생회 선거에 무관심한 사람이 연장투표를 하는 선거관리위원들이 안쓰러워서나 집요한 투표 권유에 마지못해 투표를 할 때, 이는 회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려는 선거제도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것이다. 학생회가 이렇게 꾸려졌으면 좋겠다는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투표한 유권자의 한 표가 계속되는 투표 권유로 말미암아 투표한 유권자의 한 표에 희석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투표율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는 존중되어야 한다. 50%라는 산술적 규정에 얽매이기보다는 유권자의 자유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선출투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 걱정보다는 공정하고 성실한 선거관리에 힘을 쏟는 것만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수정안>
선거시행세칙 제55조를 삭제한다. 이상 끝.


회칙개정을 위해 열린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 제출한 수정안이다.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이 50%가 되지 않으면 개표를 할 수 없고, 연장투표를 통해 50%를 달성한 후에만 비로소 개표가 가능하게 된 근거인 선거시행세칙 55조(개정원안에서는 56조)를 삭제하자는 내용이다. 실제로 2003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50%에 미달해 2004년 3월에 재선거를 치르는 난리를 겪기도 했었다.


나는 2003년 11월에 있었던 37대 총학생회 선거를 관리하며 이미 회칙개정을 생각했다. 3일째 저녁까지 이어진 연장투표에 경영대 선거관리위원들 중에 상당수가 50% 규정에 회의를 나타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며 선관위원들을 다독였지만 결국 경영대 투표함은 다른 단과대보다 몇 시간 일찍 접고 철수해야했다. 더 이상 선관위원들의 항의를 묵과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 선거에서 경영대 투표소가 일찍 철수한 것보다 더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의대, 간호대 지역에서는 투표소가 설치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고, 공대 지역 투표소에서는 오차가 너무 커서 수백표가 무효처리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분명 투표관리가 길어짐에 따라 벌어진 문제였을 것이다. 이런 일을 겪으며 투표율 50% 규정에 대한 나의 불만은 쌓여져갔다.


전체 투표율 50%를 깎아먹지 않기 위해서 경영대 다섯 개 반을 총동원해 투표 독려를 해서 41% 정도의 투표율 정도를 보였다. 어느 친구는 왜 기권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냐며 역성을 내기도 했고, 마지못해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기표대에 들어가기 전에 몇 번을 찍으면 될지를 선관위원에게 묻는 진풍경도 이어졌다. 선관위원 상당수는 다섯 개 반에서 차출되어 어쩔 수 없이 투표소를 지키고 있었지만 왜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어야하는 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회칙 개정 발의는 사실 내 개인의 의사와 더불어 당시 선관위원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내 개인의 의사라면 아마 실제 회칙 개정 발의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시 전학대회가 있는 날 이런저런 일로 바빴고, 결정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 정규가 휴가를 나와 만나서 달콤한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 안될 것이 뻔한 수정안을 제출한 것은 지난날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이것으로 당시 선관위원님들의 노고에 대해 보답이 되었다면 좋겠다.


당시 선관위원이었고 현재 A반 학생회장인 은애와 이야기를 해서 함께 발의한 이 수정안은 찬성 3, 반대 37, 기권 6으로 부결되었다. 은애양이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으므로 나 혼자 찬성을 던지고 반대가 45표 나오는 상황도 예상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가결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너무 기정사실화 한 나머지 건성건성으로 발제를 하고 질의응답과 찬반발언을 한 것이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준비해봤을 것을 그랬다.^^;


사범대 학생회장님은 연장 투표를 통해 바쁘게 살다보니 투표 기간을 놓친 학우들이 보다 더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과연 그렇게 바쁘게 사는 학우들께서 사물함 신청 기간을 깜박 잊어버리거나, 쪽지시험이나 자잘한 과제물에 대비하지 않거나, 각종 밥 약속들을 수시로 까먹을 것 같지 않다. 또한 기득권 세력인 학교와의 대치 국면에서 억압에 맞서 싸우는 존재로서의 학생회에게 그만큼의 대중적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일단 학교측과 학생회측이 사생결단의 적수 혹은 기득권과 약자의 대립 구도라는 데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이 구도를 인정하지 않으니 대중적 지지 어쩌고 하는 것도 다 설득력 없는 이야기다.


압도적 부결로 끝이 난 뒤 미술학부 부학생회장님께서는 내 문제제기에 깊은 동감을 표해주셨다. 간호대 학생회장님께서는 내 의견에 제법 공감을 가지는 대의원들이 많았다며 격려해줬다. 평소에 교류하는 대의원들과 물밑 접촉을 했다면 찬성표를 좀 더 얻어낼 수 있었겠지만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회칙 개정안을 통과시키기에는 역부족인 관계로 일체의 로비(?)는 하지 않았다.^^;


내 학생회 일꾼 3년을 정리하는 마지막 정치적 로망(?)이었던 50% 규정과의 싸움은 내 자신의 귀차니즘으로 싱겁게 막을 내렸다. 50% 투표율 규정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으며, 투표율 50%와의 투쟁이 되어버린 현재의 총학 선거판에서 실제로 무언의 압박이 되고 있다.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의 자유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것이 맞다면, 참여한 사람들 간의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통해 다수표를 획득한 사람이 일정 기간 권한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원칙을 신뢰한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투표소로의 동원, 가치 희석화 등의 표현은 고종석 선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치적 무관심이나 투표의 기권 그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느 정도 개인적 선택의 영역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이 마지못해 투표를 할 때, 그 행위는 공동체의 의사를 수렴한다는 선거제도의 존립 근거를 해칠 수 있다. 예컨대 이 사회가 이런 식이었으면 좋겠다는 10의 욕망을 가진 개인의 한 표가, 사회가 저런 식이었으면 좋겠다는 1의 욕망의 한 표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생각을 지닌 개인의 한 표에 의해 상쇄되는 것은 매우 불공정하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사회의 운행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굳이 투표소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고종석, [자유의 무늬](2002), 개마고원 刊, 20쪽


선출 투표는 참여한 사람들의 의사의 총합이 반영되면 그만이다.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선출된 대표자에게 승복해야 하는 것이 의회 민주주의의 룰이다. 기권의 자유 혹은 선거 무관심의 권리는 이미 승복하겠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파시스트라면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할 테니 논의에서 제외한다. 또한 기존 후보들이 자신의 의사를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대리인 비용 자체를 치르기 거부하는 사람이니 논의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여하간 이런 판단 하에 “최소한의 대중의 지지” 등의 주장에 동감하지 않는다. 50% 투표율로 형식적 대표성을 갖추려는 것도 억지스럽다. 문제는 억지스런 동원이 참여의 확장으로 착각되지는 않나 하는 우려다.


투표율 50% 규정이 정치적 동원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처럼 임시 전학대회 자리 자체가 정치적 동원의 성격이 짙었다. 회칙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사정족수 46명(전체 대의원 69명의 2/3 이상)을 채우기 위해 다음날 시험을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겨우 불러내고, 아픈 사람도 붙들어 놓아서 겨우 46명을 딱 채워 회의를 속개할 수 있었다. 물론 전학대회는 중요한 자리고, 회칙 개정도 책임감이 막중한 업무다. 그러나 이렇게 거의 인신구속 수준의 회의를 통해 해치운 회칙 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50% 투표율을 쥐어짜 얻어진 형식적 대표성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14년만의 회칙 개정이었고 진일보한 내용도 많이 담겨져 있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나 홀로 반대표를 던졌다(찬성 36/ 반대 1/기권 9).


하이에크는 케인즈 경제학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에 케인즈의 오류를 지적했고, 사회주의가 득세할 때 사회주의가 반드시 붕괴한다고 외쳤다. 오랜 기간 그는 갖은 비판을 겪었지만 1970년대 케인즈의 이론이 허점을 보이며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죽기 몇 년 전에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아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버지, 지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구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이에크는 『거 봐, 내가 뭐랬어!』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나는 내 제안이 시기상조였을지는 몰라도 머지 않아 내가 뭐랬어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누차 강조하지만 개인 선택의 영역을 강제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가 50% 규정에 숨이 차서 연장투표와 함께 투표 강권이 학내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광경은 끔찍하다. 정치적 동원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것을 두 번 세 번 권할 때 그것이 동원이 된다. 의도했던 행위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그 행위로 유도하려는 시도가 적정 수준을 넘어가면 동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선의가 충만해서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그것이 동원이다. 가령 열혈 개신교도들이 성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그 지극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지겨운 일이다. 그들은 내가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있는 것에 안타까워하겠지만 말이다.


학생회 조직이 앞으로 계속 쇠락한다면 학부 총학생회 선거의 위상이 대학원 총학생회 선거 수준으로 전락할지 모르겠다. 설마 그렇게 까지는 안된다고 해도 꽤 비슷해질 개연성이 있다. 50% 규정으로 그것을 막는 시늉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미 시대가 학생회 같은 조직으로 단결하기보다는 제 입맛에 맞는 곳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전현직 학생회 일꾼들이야 못내 섭섭하겠지만 이것은 개인적 감상과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이런 아쉬움은 남는다. 마음놓고 개인주의 문화를 만끽해도 될 만큼 사정이 나아졌는가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세상사의 모든 일들이 따져보면 전환기이고, 과도기이기 마련이지만 분명 오늘날의 학생사회는 크나큰 변혁에 직면하고 있다. 도가적 감수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변혁을 인위적으로 교정하려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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