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시절 [장자]에 대한 독후감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12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자판을 눌렀던 기억이 난다. 이 때 이후로 한나절 이상 투자한 글과 그렇지 않은 글로 이분화하는 경향이 생겼다. 어차피 잡글인 것은 매한가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그 때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요즘도 가끔 그런 필(Feel)을 종종 받기도 한다. 침식을 잃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주로 밥 벌어먹는 것과 큰 관계가 없어서 고민이기는 하다.


며칠 동안 연호(年號)를 통해 한국사를 읽는 작업을 해봤다. 휴학생의 여유에 힘입어 간만에 한나절 넘는 글을 쓰는데 한 문장 한 문장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저런 것들을 찾아보느라 자꾸 제자리걸음이다. 본래 생각이나 행동이 느린 편이니 글이라고 빨리 써질 리가 없다. 조금 정성을 들인다 싶으면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 나를 놀라게 한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는데 쓰는 시간, 많은 생각을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 모두가 흥겹다가도 이내 고통스럽다. 이처럼 고질적인 생산성의 문제 앞에 맞닥뜨리면 회의가 몰려오기도 한다. 당나라 시인 노연양(盧延讓)은 "한 글자를 꼭 맞게 읊조리려고 몇 개의 수염을 비벼 끊었던가"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하물며 하찮은 소인(素人, 아마추어)으로서 글 쓰는 나는 애끓는 마음을 천형처럼 안고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다.


어디 그뿐인가. 혹시나 나만 알아먹는 이야기가 되지 않게 이런저런 부연설명이나 주(註)를 다는 것도 번거롭다. 내 온라인 보금자리는 분명 암호로 채워진 내밀한 공간은 아니다(그럴 거면 그냥 문서파일에 저장하면 그만이다). 내 글을 남들도 보고 왈가왈부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나중에 내가 썼던 글이 차꼬가 되어 돌아오지는 않을까 신경 쓰는 것도 머리 아프다. 내가 꾹꾹 눌러썼던 텍스트는 지워지지 않고 내 곁에 맴돈다. 자신이 했던 말이 다시 돌아와 내게 비수가 되는 것처럼 아프고 부끄러운 일도 없다.


이처럼 글로써 소통하는 것은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남이 읽기 위한 글, 남이 읽어줬으면 싶은 글을 쓰기로 한 이상 어느 정도의 괴로움은 감수해야 한다. 가끔 이것저것 말하거나 글 쓰고 싶어질 때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떠올린다.


지식은 회중시계처럼 살짝 호주머니 속에 넣어 주면 된다. 내보여 자랑하고 싶어서 굳이 필요도 없는데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 보거나, 시간을 가르쳐 주거나 할 필요는 없다. 시간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 때만 대답하면 된다. 시간의 파수꾼이 아니니까 누가 묻지 않는데 시간을 알려 줄 필요는 없다.
- 필립 체스터필드,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1999), 을유문화사, 95~96쪽


그렇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사는 사람은 부박하다. 무언가 참을 수 없어 목구멍에서 뜨거운 이물감이 꿈틀거릴 때 쓰여지는 헌걸찬 글 한편이 그립다. 앞으로는 한 편의 글을 쓰고 한 마디의 말을 하기 위해 그것의 열 배가 넘는 책을 읽고 남의 말 열 마디를 듣도록 하자. 침묵의 시간이 살뜰할수록 내뱉는 말과 글이 탐스럽다. - [憂弱]

추신 - 이 글의 산파인 "연호(年號)로 읽는 한국사"라는 글은 거의 마무리 단계다. 개재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바람까지 잡았으니 어여삐 읽어주시기 바란다. 좀만 기달리시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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