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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5 소개팅에서 지지정당 묻기 (1)

(2009년 3월에 쓴 글을 대폭 수정하였습니다)

 

1.

2008년 10월의 어느 술자리에서 미팅, 소개팅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호기심 어린 마음에 듣고 있던 내가 한마디를 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남녀 간에는 소개팅을 주선하면 실수라고 하던데 거기에 동감한다”라고 말했더니 좌중이 폭소했다(나처럼 재미없는 사람이 이렇게 남을 웃긴 일도 드물다).

 

 

내가 언급한 이야기의 출전은 이진 선생님의 『나는 미국이 딱 절반만 좋다』(북&월드, 2001)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다. 저자는 공화당파 남자와 민주당파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나서 두 사람 모두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글쓴이는 양 당의 지지자들이 온몸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사례를 나열하며 미국의 정치 문화를 실감나게 전한다.

 

 

나는 다대다로 만나는 미팅 자리에서까지는 따지지 못하더라도, 일대일로 만나는 소개팅에서는 지지정당을 물을 수 있다는 개인적인 소견을 밝혔다. 본래 정치적 가치관이라고 말하려다가 무슨 사상 검증하는 냄새가 나서 지지정당이라고 고쳐 말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한 까닭은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정당의 지지자를 내게 소개시켜주면 상대방에게도 실례고 주선자와도 서먹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

업무상으로 만나는 관계에서야 공적 영역에 대한 견해를 크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친구나 애인 같은 사사로운 만남에서마저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을 꺼리는 풍토는 좀 누그러뜨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개팅 전에 상대방에 대해 알고 싶은 정보 가운데 하나가 지지정당(혹은 사회적 정견)이라고 했더니 놀랍고 어색하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나는 사사로운 소개팅 자리 같은 사적인 영역에서도 사회적 정견을 마음대로 나누지 못하는 한국의 문화가 너무 치우쳤다고 본다. 공적 영역에 대한 대화가 막혀 있다 보니 이야기의 소재는 사적 영역으로 집중된다. 자연스레 외모나 취미생활 및 생활습관 같은 지극히 개인적 영역에서 맴돈다. 좀 더 나가더라도 연예인에 대한 소식이나 예능프로그램을 포함한 문화적 이슈 정도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은 듯싶다.

 

 

이런 문제의식을 김별아 선생님께서 <대통령에게 쌍꺼풀을 허하라>(한겨레, 2005. 3. 13)라는 칼럼에서 잘 짚어주신바 있다. 공적인 영역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사적인 영역은 감시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종종 거꾸로 되어서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은 억압되고, 사적 영역에 대한 간섭이나 참견이 넘쳐흐르는 것 같다.

 

 

3.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을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한국의 문화는 ‘비정치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발현된다. 그런데 이러한 강박관념이 주류적 정치세력의 과점 사태에 일조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비정치적이길 권하는 사회가 결국 오늘날 지배적인 세력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는 현상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어쩌면 비정치적이라는 정언명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분들이 가장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이 든다. 여담이지만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에만 기대는 안철수 후보 캠프와 그 지지자들의 반정치주의적인 행보가 우려스러운 까닭이기도 하다. 기존 정당들이 그 나름대로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옥석을 가릴 일이지 낡은 정치라고 무조건 매도하고 타자화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다.

 

 

비정치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청년들이 남았다. 사회에 대해 가장 투덜거릴 법한 젊은이들이 세속적 기준을 맞추는데 허덕이느라 체제순응형 인간이 되어버린다면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도나 중립을 내세우며 단순히 양극단의 산술평균에 천착하는 분과는 소개팅을 해도 재미가 없을 듯싶다. 이 땅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갈지 어설프게나마 의견을 나누고, 정책이나 가치 논쟁을 벌일 용기나 정성이 있는 분들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다양성을 애호하면서도 자신의 당파성을 감추지 않는 성숙한 민주 시민과 연애하고 싶다는 바람은 이 얼마나 소박한가?^^;

 

 

4.

2011년 7월, 피서 삼아 하루를 꼬박 들여 다카무라 가오루의 『마크스의 산』을 읽었는데 그다지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지금이야 재출간되어 쉽게 구해 읽을 수 있지만 절판된 시절에는 장르문학 애호가들이 헌책방을 뒤지게 만든 책이었던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개인의 취향이 버물리는 세상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뜬금없이 다짐하는 계기가 된 독서였다. 이런 사적 영역의 취향과 공적 영역에 대한 생각은 접근 방식에 다소 차이가 날 듯싶다. ‘개인의 취향’은 가급적이면 존중하는 게 옳다. 그러나 ‘개인의 생각’은 인정하되 토론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사회적 정견이라고 분류하는 것도 직관적인 판단, 단순한 이끌림에 해당하는 경우가 적잖다. 양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시 한 번 평가하고 스스로 다시 궁리하여 보다 나은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유효한지 여부다. 가령 “나는 당신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당신이 불교도인 것에 반대한다”, “나는 당신이 초등학생을 무서워하는 것에 반대한다”와 같은 발언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와 같은 개인의 취향에 함부로 찬반 투표를 던질 수 없다. 적어도 머뭇거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양식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 출판계가 추리소설 번역에 매달리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교계의 불교문화유산 관리 방식에 이견이 있다”, “나는 초등학생들이 치르는 시험 제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라는 식으로 생각을 교류하는 행위는 애인 사이든, 친구 사이든, 선후배 사이든, 사제 사이든 간에 얼마든지 장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중도니 상생이니 통합이니 하면서 토론과 갈등이 필요한 지점을 적당히 넘어가려 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5.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003년에 펴낸 자서전 『Living History』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인다. 힐러리는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화당을 지지했다. 1964년 힐러리의 선생님은 대통령 후보 모의 토론회 시간에 힐러리에게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 역을 맡겼다. 힐러리는 도서관에서 민주당 강령과 백악관 성명 등을 읽으며 민주당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종국에는 민주당원이 된다. 힐러리는 자기 스스로가 반대자가 되어 가려진 일면을 보았다. 그에 비추어 나는 너무 편협한 짓을 벌이는 듯싶다. 물론 애정과 정견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힐러리의 어머니는 비밀스런 민주당 지지파였다고 한다.

 

 

소개팅의 의미를 너무 무겁게 여겨서 이런 횡설수설을 늘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간 내게 소개팅을 제안해주셨던 많은 분들의 후의에 보답하는 길은 솔직한 모습으로 임하는 것일 따름이다. 혹시 소개팅 자리에서 배우고픈 정치적 반대자를 만날지도 모른다. 내가 첫눈에 반할 ‘다른 생각’들이 대한민국에는 넘쳐날 게다. 그럼에도 내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하길 바라는 마음은 바꿀 생각이 없듯이, 소개팅 여성도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응답하라 1997> 6화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온전히 나를 버리는 일이다. 나답지 않은 짓을 하게 만드는 힘, 사랑이다”라고 역설했지만, 사랑을 쉬운 길로만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으리라.

 

 

“저는 이명박 지지자는 아니지만...”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저는 야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저는 친미파는 아니지만...” “저는 진보주의자는 아니지만...” “저는 군 면제는 아니지만...” “저는 재벌옹호론자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말을 입에 달아야만 안심이 되고 비로소 색안경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한국 사회는 아직도 불행하다.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문화를 퍼뜨리기, 내가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다. 기왕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나갈 수 있으면 더욱 행복하겠다.^^ - [無棄]

 

 

<추신>

이 글을 보신 분들이 저를 까다로운 녀석으로 보실까봐 두렵습니다.ㅜ.ㅜ 사실 제가 소개팅 자리를 자주 못 나가는 까닭은 위 글과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독대를 즐기지 않는 취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다는 무의식이 작용해서 대여섯 명 정도 모이는 자리를 가장 즐기는 게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둘만으로도 알콩달콩 충만하게 보낼 수 있는 관계, 그래서 사랑이 위대한지도 모르겠습니다. 2013년 초부터는 소개팅 자리를 사양하지 말고 나가봐야겠습니다. 앞으로도 소개팅 제안 많이 해주시와요^^;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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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요 2016.07.04 14: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한번 올려보아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