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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8 통합진보당, 역사 앞에서

(오래간만에 쓰는 졸문이 이런 내용이라니... 멘붕입니다)

 

2012년 7월 26일에 열린 통합진보당 의원총회에서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이 부결됨으로써 통합진보당의 혁신은 점점 더 어려운 지경에 놓였습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무겁게 새기고, 국민의 눈높이를 자신의 시선으로 삼고자 노력하셨던 분들이 잘 추스르셔서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소중한 한 표를 모아준 2,198,082명의 국민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셨으면 합니다.

 

부정경선과 폭력사태와 관련해서 구당권파 의원들이 발화자만 바뀌고,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할 때 하나의 인격체가 아닐까 어질어질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바랐던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는 끝내 들리지 않네요. 부정경선과 폭력사태에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하는 구당권파의 행태에 온정적인(?) 일부 지지자들도 민주시민의 양식과는 멀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그걸 이제 깨달았냐고 핀잔하는 지청구가 벌써부터 들려오지만요).

 

저는 지금까지 숱하게 틀린 생각을 했고, 그릇된 결정을 했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 두려운 건 실수나 오류 자체보다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시의적절하게 고치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할 때일 겁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바라보며 그간 제가 품고 있던 현실 정치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들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진보정당과 관련해서는 제 지식이 모자라 여러 오판을 한 듯싶습니다. 앞으로 좀 더 궁리해서 처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령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국면에서 자주파의 폭거가 싫어 탈당했다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견제하겠다며 입당한다는 사람은 못 보겠다며 핀잔을 다소 섞었던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상처를 입으신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석기 씨가 제명안이 부결된 뒤 “진실이 승리하고 진보가 승리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말의 연민도 들지 않는 참담한 요설입니다. 혹시 ‘승리’라는 어휘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시겠죠? 아니면 ‘진실’과 ‘진보’라는 단어를 잘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김제남 씨는 자신을 비난하는 여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김 씨의 7월 28일에 한 기자회견은 현실감각 따위는 찾을 수 없는 궤변이었습니다. 며칠간의 언행을 보아하니 ‘책임’을 기대하는 게 난망인 듯합니다만(제가 틀리기를 바랍니다).

 

진보를 참칭하는 자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것이 이번 파동의 역사적 교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제 오랜 관심사는 보수를 참칭하는 자들에 대한 견제이지만요). 하지만 그 그물이 애먼 사람들을 다치게 할까봐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하나마나이면서도 무시무시한 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네요. 이 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무겁게 새기고, 국민의 눈높이를 자신의 시선으로 삼고자 노력했던 신당권파 지도부와 혁신을 지지한 당원 여러분에게 가슴 깊이 연대감을 표합니다.

 

저는 오매불망 합리적 보수, 개혁적 자유주의 정당이 한국 정치의 중심적 역할을 하기를 희망하는 녀석이지만, 지난 총선에서는 헌정사 최초로 진보정당이 원내 교섭단체를 이루길 바라는 마음을 제 주위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저조차도 이렇게 뒤숭숭한 마음인데 이 정당에 좀 더 많은 희망을 보탰던 분들은 얼마나 상심이 크실지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이 정도의 진상 규명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거대 정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였는데 후속타로 자정 결실을 맺지 못해 국민의 실망한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실기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저는 그저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지난한 여정에서 구당권파를 비판했던 분들의 정치적 대표성이 더 늘어나기를 바랄 따름이었는데 말입니다. 야당 지지자 하기가 참 쉽지 않네요.

 

이석기, 김재연, 이상규, 김선동, 김미희, 오병윤... 이 이름들을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들과 그 둘레 사람들, 이네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공적인 자리를 탐하지 못하도록 진보진영 내부의 선발절차를 가다듬기 바랍니다. 언뜻 연좌제의 소지가 있어 보이지만 공직이야 말로 국민과 역사 앞에서 책임을 지는 자리이니까요. 특히 지역구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당선한 이상규, 김선동, 김미희, 오병윤 씨는 당최 지역구민의 마음이라는 것을 헤아릴 능력이나 될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무쪼록 이 의원들과 그 보좌진들은 이번이 마지막 의원직 수행이실 테니 열심히 하시라는 말 밖에 드릴 게 없네요. 그만 두실 분은 거취를 정하시면 더 좋겠지만요.

 

넘어진 자는 결국 넘어졌던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보정당의 재구성을 위해 현행 진성당원제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한국 정치문화에서는 어느 정당이든 유럽식의 대중정당과 미국식의 원내정당을 절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볼 때, 당원에게 배타적으로 권리를 줄 사안과 당원이 아닌 지지자나 일반 국민도 참여할 수 있는 사안을 정하는데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이라는 가치를 살리면서도, 책임 있는 공당의 행동이 소수 당원들의 동아리 활동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이뤄지길 희망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통합진보당을 찍지 않으신 90%의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진보정당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고, 지금보다는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한 번쯤은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 믿음은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이번 파국의 가장 심각한 여파이겠지요. 우리 사회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입술이 닳아 없어진다면 우리들의 이가 무척 시리겠지만, 주권자들이 스스로 감내한다면 달리 방도도 없습니다.

 

역시 역사는 진보한다기보다는 맹자의 말씀처럼 한 번 다스려지면 한 번 어지러워지는[一治一亂] 모양입니다. 물론 역사를 바꿔 다스려지게 만드는 힘은 결국 시민 상식의 연대이겠지만요. - [無棄]

 

<추신>

1. 이석기 씨가 심상정 전 원내대표의 악수를 거절한 건 정말 저열한 행태입니다.

2. 이석기, 김재연의 제명이 부결된 날에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는 사퇴하는 살풍경이라니요.

3. 김제남 씨를 향해 ‘양당제 요정’이라는 트위터 세상 속 표현에는 한숨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4. 서울 관악구을, 경기 성남시중원구, 전남 순천시곡성군, 광주 서구을 지역구민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올립니다.

5.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변화는 다함이 없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회남자(淮南子)』가 출전인 새옹지마(塞翁之馬) 고사의 마지막 구절을 곱씹습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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