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영화의 줄거리를 대강 알고 있다. 우리말에서 ‘밥숟가락을 놓다’가 죽음을 일컫듯이 미국에서는‘양동이를 걷어차다(Kick the Bucket)’라는 표현이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여하간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노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내용이다. 대학 시절의 카터(모건 프리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 백만장자가 되기 따위의 목록을 적었지만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같은 소박한 바람을 적는다.
대학 새내기 시절의 내가 품었던 꿈도 야무졌다. 고대신문 편집장 되기, 책 1,000권 읽고 유식 찬란해지기, 평생 함께 할 지인 50명 만들기 같은 거창한 꿈으로 그득했다. 나는 입학을 하면서부터 지상 과제가 무사졸업(!)이었기 때문에 그 목표가 손에 잡힐 듯한 시점이 된 요즘에는 허망함이 엄습한다. 버킷리스트를 흉내내서 학사모리스트를 만들어봐야겠다. 입학 당시의 리스트보다는 많이 단출하겠지만 그마저도 얼마나 버거운 일이란 말인가. 얼마 더 담백해져서 둘레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하는 순간에도 유종의 미를 빙자한 요행수를 바라는 것까지 막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이거 하나쯤은 성사되겠지’하는 열망 말이다.
고종석 선생님은 <미친 사랑의 기도>라는 칼럼에서 대입 수능을 치르는 자식이 시험을 잘 치르길 비는 어머니의 기도가 추하다고 쓰셨다. “그들 가운데 자식이 애쓴 만큼만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자식에게 ‘덤의 운’이 따르기를 기원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나는 ‘나도 내 실력을 다 발휘하고, 상대방도 제 실력을 다 발휘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도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 무신론자인 나는 기도가 무기력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씀에 기대볼 만하다.
수능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때 거의 모든 수험생과 관계자들은 ‘덤의 운’을 빌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평가로 자원배분이 현저하게 차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신, 논술,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을 반영하려는 교육현장의 시도는 ‘덤의 운’을 빌려는 유인을 줄인다. 매번 요행수를 바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학생들의 고통을 자아내는 부작용을 낳았다. 획일적인 대학 서열화라는 또 다른 절대적인 기준이 온존한 상태에서 결국 모든 분야에 ‘덤의 운’을 빌어야 하는 기도의 남발 사태로 귀결되고 말았다. ‘덤의 운’이라도 빌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놓은 구조를 고찰해보는 것도 좋은 생각거리가 될 듯싶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올 상반기 인턴십을 진행한 32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인턴사원 평균 경쟁률이 54대 1로 집계됐다. 100대 1을 넘은 업체도 전체의 21.9%나 됐다는데 이런 별 따기라면 ‘덤의 운’을 빌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토익 공부를 지지리도 안 하기 때문에 낮은 점수가 억울하지는 않지만 토익 점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란 녀석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건 좀 서운하다. 요즘 시대에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은 한국인의 사명(?)을 거스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적어도 영어 공부에 있어서 만큼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편익을 내고 싶다. 앞으로 공부하는 시늉이야 하겠지만 그 때에도 찍은 문제는 남들보다 더 맞히길 바라고, 기왕이면 아는 문제가 나오길 희망할 게다. 밥벌이 경쟁에서 호구지책을 마련하고자 내 자신을 위한 기도는 계속된다. 내 분수보다 큰 것을 누리기를 바라고, 실제보다 높은 명성을 탐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내 둘레에 나와 친한 사람들의 ‘덤의 운’을 비는 일도 다반사일 게다(그러고는 생색을 내겠지). 나중에는 둘레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조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리라(잘되면 베푼다고 유혹하겠지).
다만 ‘덤의 운’을 바라는 정도를 자꾸 줄여나가고 싶다. 운의 자리에 재주를 채워 넣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건 자기가 하는 일에 가슴 뛰는 사람이 되고, 자기가 딛고 있는 곳에 정성을 쏟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를 위한 기도가 조금 덜 추하고 조금 덜 역겨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를 위한 기도가 대개 무기력하듯이 나와 무관한 것들을 위한 기도도 무기력하다. 가령 종부세 완화를 막기 위한 나의 기도 또한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내 이익과 관계없이 아주 좋은 의도에서라도 ‘덤의 운’을 바라는 것은 삼가야겠다(물론 종부세 무력화 반대는 내 이익과도 관련이 있긴 하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덤의 운’을 꿈꾸는 것에는 절제가 있어야한다. 이러한 자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좋은 습관의 축적’과 잇닿는다. 시의 적절한 절제는 습관이 되어 마땅하다. - [無棄]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버킷리스트는 괜찮은 영화였어요. 한번쯤 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듯 합니다. 오빠 글을 읽다보면 제 블로그는 어디 내놓기가 부끄러워지네요 하하. 여튼 오늘 잠깐 뵌김에 웹에서도 한번 들러 보았습니다. 근시일내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남은 한주도 잘 보내시길:)
난 영화를 도통 안 봐서 민망하다는... 나를 위한 기도를 가능하면 줄이자고 했는데 최근에 남발한 것 같아. 이 글 쓴 것도 있고 해서 친구에게 나 대신 축원을 해달라고 강권(?)하고 있어. 학기 중에 외국 여행 다녀오는 모양인데 영문은 모르겠으나 재미나게 지내다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