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누리지 않는다.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벗어나지 않는다.
군자가 인을 떠나면 어디에서 이름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사이에도 인은 어김이 없으니 황급한 순간에도 반드시 인을 행하고, 곤경에 처한 순간에도 반드시 인을 행한다.”
- 『論語』 里仁편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구절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크게 보면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대강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가난함과 천함 이것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벗어날 수 없다면) 떠나지 않는다.


2) 가난함과 천함 이것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닐지라도 애써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2)의 해석이 전통적인 해석이지만 선뜻 의미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1)의 해석도 음미할 만하다. 박기봉 선생님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을 제외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1)의 해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호기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논어 관련 주석서들을 이것저것 뒤적여봤다. 내가 이것저것 찾아본 번역들을 짜깁기하고 멋대로 편집한 것이라 드러내놓기 민망하지만 스쳐 가는 생각거리로 삼아주시길 바라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올린다.


전통적인 해석인 2)의 핵심 논거로 작용했던 주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빈천이 아니지만 억지로 그 상황을 벗어나지 않는다, 즉 빈천을 편안히 여기는 태도라고 풀이했다. 군자가 부귀를 자세히 살피고 빈천을 편안히 여김을 이와 같이 한다고 보았다. 하안(何晏)과 형병(邢昺)은 “운수가 막힐 때와 태평할 때가 있으니 군자가 도를 실천할지라도 도리어 빈천한 경우가 있다. 이는 도로써 얻은 것은 아니다. 비록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억지로 벗어나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時有否泰 故君子履道而反貧賤 此則不以其道而得之 雖是人之所惡 不可違而去之)”라고 했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호산 박문호가 不以其道得之 앞에 雖(비록)의 뜻이 있다고 본 것도 이와 상통한다.


다시 말해 정당하게 주어진 빈천이 아닐지라도 애써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은 착하고 어질게 살았는데 사회가 타락하고 정치가 어지러워서 군자가 빈천하게 되었다고 해도 구태여 그 빈천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당한 빈천이라면 태연하게 안주하라, 안빈낙도(安貧樂道)하라고 충고하는 글귀가 된다. 맹자가 대장부를 설명하며 “가난하고 천하더라도 자기의 뜻을 옮기지 않는다(貧賤不能移)”라고 했던 구절을 비롯해서 유가의 경전에서 곧잘 접하게 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나가는데 부귀나 빈천 따위의 외부적인 요소에 휘둘리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약용은 왕충(王充)과 견해를 같이 해 1)의 해석에 가깝게 풀이했다. “진실로 이와 같이 본다면 군자는 끝내 빈천을 버리는 날이 없을 것이다. 한번 빈천을 얻어 오직 이를 버리지 않는 것으로 법을 삼을 뿐, 도리인지 도리가 아닌지를 전혀 묻지 않는다면 어찌 군자다운 시중(時中)의 의(義)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직 그 정당한 도리로 얻지 않았기에 그것을 버리지 않았을 따름이다”라며 하안의 주석을 반박했다. 결국 이러한 논리로 “빈천은 비록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나지 못하면 그것에서 떠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즉 정약용의 관점은 2)와는 달리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날 수 없는 한 벗어나지 않는 것일 뿐 정당한 방법을 도모한다면 빈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좀 더 의역하자면 부귀처럼 바라는 것일 때는 온당하게 머무를 만한 가를 살피고, 빈천처럼 싫어하는 것일 때는 마땅하게 벗어날 방도를 궁리하라는 뜻이 될 듯싶다. 不以其道得之의 得之에서 去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 得去之로 해석했다. 得은 빈천에서 떠나는 방법을 얻는 것을 일컫는 셈이다. 양백준(楊佰峻)도 빈천은 사람들이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得은 부적절하고 不以其道得之의 得之를 去之로 바꾸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1)과 2)의 해석 모두 그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딱히 이것이 맞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한문 번역에서 정답을 내놓으라고 투정부린다면 우스운 일이다. 한쪽은 인간다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빈천에 억울해 하지말고 가야할 길을 가라고 주문하고, 다른 쪽에서는 빈천을 벗어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를 염두에 두라고 다독인다. 사실 서로 강조하는 바가 살짝 다를 뿐 결국 지향하는 바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자세한 논어 번역서를 읽다 보면 이렇게 해석상 이견이 있는 구절이 적잖음을 발견하게 당혹스러워진다. 전통적 주석과 별개의 견해가 오늘날 제시되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빈천은 탈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써 추구할 만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적극적으로 빈천을 추구하는 삶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본 셈이다. 요즘 회자되는 ‘간소한 삶’의 개념과 잇닿는다. 이렇게 보면 其道得之는 도로써 얻은 빈천이 되고 不以其道得之한 도로써 얻지 않은 빈천이 되어 떠나지 말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전통적 해석은 정당하지 못한 빈천, 부당한 빈천을 자기 잘못에 기인한 것뿐만 아니라 불의한 세상 때문에 뜻하지 않게 손해를 본 것도 감내해야 한다(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정의한다면, 신영복 선생님은 부당한 빈천은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한정해서 본다는 차이가 있다. 


전통적 해석의 경우에 군자는 빈천은 외물(外物)이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고 도를 추구하라, 인을 행하라는 식의 가르침이라면 신 선생님은 부당한 빈천이 불합리한 사회구조나 어질지 못한 사람의 간계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인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저질러서 얻게 된 것으로 본 듯하다. 신 선생님도 반드시 이렇게 봐야 한다고 역설하시기보다는 이건 어떠냐고 제안하시는 정도인 것 같다. 이 부분도 놓치지 말고 생각해보자고 화두를 던져주신 것으로 읽었다.


이남호 선생님은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서문에서 “내가 읽은 보르헤스 소설은 이미 보르헤스의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쓴 소설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선생님께서는 문학평론가이시기 때문에 엉뚱한 해석마저 힘있게 들린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유명한 명제를 좀 패러디 해 권위 또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라는 아우라를 접하고서 거기에 얽매이지 않기가 힘들다. 주자의 광휘에 맞서길 꺼렸던 조선의 유학자도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문학작품의 의미는 텍스트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의도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해석 속에 있다”라는 이 선생님의 말씀은 한문 고전을 읽을 때는 얼마만큼 적용될지 고심스럽다. 문학은 오독이 창조적 독서의 일환일 수 있지만, 아니 오독이라는 것이 성립하는지가 의심스럽다. 한문 고전을 한국어로 번역해 읽을 때 오역 시비가 있다면 그것을 풍요로운 해석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는 것인지, 다른 성질의 문제인지 헛갈린다.


가령 『논어』는 孔子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고 그 책을 읽어온 모든 사람들의 공동저술이다. 『논어』에 새로운 주석을 단 사람은 『논어』를 새로 쓴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공자가 쓴 『논어』는 빈약한 내용의 책이었지만, 현재 내가 읽는 『논어』는 매우 풍부한 내용을 지닌 책이 되었다.
- 이남호,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 민음사, 1995, 144쪽


내 얕은 『논어』 읽기는 발설자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과연 공자와 제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그네들이 살던 시대 배경은 무엇이고 어떤 해법을 내놓고 있느냐는 식으로만 접근했다. 텍스트에는 실체적 진실이 있어야 하고 그것의 근처를 더듬는 것이 학생의 본분인 것으로 믿어왔다. 교조적 지위를 누렸던 주희의 해석과 다른 해석을 부러 찾으려는 노력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발언록을 온전히 복원하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실익도 없다. 어쩌면 고전의 해석도 실체적 진실이 있다기보다는 결국 합의되고 구성되는 것인지 모른다.


용기를 내서 고전을 집어들고 있다보면 내 자신은 그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라는 절망감이 엄습하기 일쑤다. 눈을 지긋이 감고 사색하기보다는 어느 어깨가 더 탐스러운지 물색하느라 눈알을 바지런히 굴렸던 것 같다. 그저 거인의 쩍 벌어진 어깨 위에 올라서 호가호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나 스스로를 반성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할 때 知新은 배운 것을 자신의 삶에서 재해석하고 다른 일에도 확장시켜 가는 과정이다. 이런 세세한 구절 풀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천하느냐이다. - [無棄]

2008/06/26 01:38 2008/06/26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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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를 마치면서 “배움은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고, 이미 배운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學如不及 猶恐失之)”라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미욱한 제자가 교수님의 강의에 보답하고픈 마음에 꺼내든 구절이다. 학기 내내 내 능력이 모자라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할까 전전긍긍했지만 이제 학기를 마치며 그렇게 애태우며 배운 것을 너무 일찍 잊어먹지 않도록, 기왕이면 생활 속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정약용 선생은 猶恐失之를 『논어고금주』에서 嚮道而行 如有重寶在前 爲他人所先獲 此之謂惟恐失之라고 풀이하셨다. 기초한문을 수강한 학생으로서 용기를 내보자면 “도를 향해 가는데 마치 귀중한 보배가 앞에 있어 다른 사람이 먼저 얻어 가는 바를 두렵게 여기는 것이니, 이를 일러 惟恐失之라고 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싶다. 爲는 ‘생각하다’로 보았는데 여기서는 두렵게 여긴다, 조마조마하게 생각한다 정도로 의역을 하면 대강 이런 뜻이 나온다.


정리해보면 學如不及은 배울 때는 능력이 모자라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정도로 볼 수 있다. 猶恐失之의 경우 통설은 그렇게 애태우면서 배운 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잘 체화시키라는 뜻이다.  猶恐失之는 배운 것을 온축해내는 복습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정이천 선생은 “오히려 잃을까 두려워하여 그대로 지나칠 수 없으니, 잠시 내일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猶恐失之 不得放過 才說姑待明日 更不可也)”라고 주석을 달았다.


반면에 정약용 선생처럼 읽는다면 견선여갈(見善如渴)과 비슷한 맥락에서 배움도 목마를 때 물을 본 듯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기야 착한 일도 그렇지만 배움이라는 것도 남에게 양보하기보다는 먼저 달려가야 할 것일 테니 말이다. 정약용 선생의 견해는 부지불식간에 놓치고 있는 진리가 없나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고 혹여 숨겨진 가르침이 있거든 귀한 보석을 만난 듯 내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박세당 선생의 『사변록』에는 “학문을 할 때에는 부지런히 하되, 항상 부족한 것같이 하며, 오히려 잃어버릴까 두려워해야 하는데, 하물며 자기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 얻음이 있겠는가”라고 풀이하면서도 정이천의 주석을 인용하되 “이같이 하여도 오히려 얻지 못할까 근심한다(又云如此猶恐不獲)”라고 의역을 했다. 정이천이 내일로 미루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얻지 못할 것을 염려하듯이 공부하라는 뜻으로 본 모양이다. 주희의 주석과는 사뭇 다른 뜻이라 “앞뒤 말이 조금 같지 않는 바가 있다(前後說 微有不同)”라며 의문을 표했다.


동양고전연구회에서 낸 『논어』 번역서에서는 猶恐失之에 대한 정약용 선생의 견해를 “이미 배운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가르침을 놓칠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뜻이 와 닿지 않는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놓칠까 걱정하는 것은 이미 學如不及에 내포되어 있는 개념 같기도 하거니와 앞서 언급한 정약용 선생의 비유에서 그런 내용이 선뜻 도출되지도 않는 듯싶다.


물론 여기서의 ‘가르침을 놓친다’는 의미를 學如不及에서는 강의 진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개인적인 문제로 보고 猶恐失之에서는 여러 학생들 가운데 쳐져서 체득하지 못한다라고 좀 나눠볼 소지는 있다. 그런데 스승의 가르침은 우수한 제자 몇 명이 독차지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그런 식의 경쟁으로 묘사하는 건 어색하다. 역시나 내가 봤던 대로 진흙 속의 진주와 같은 깨우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보자 뭐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하간 學如不及 猶恐失之하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 [無棄]

2008/06/26 01:27 2008/06/26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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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말미에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드라마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으나 혹시 미리 짐작하시게 만들 수 있으니 유념해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연 이 드라마는 아직도 <거침없이 하이킥> 재방송을
가장 즐겨보는 나를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인가?^^;


정이현의 동명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주인공 오은수(최강희 분)는 양다리를 넘어 세다리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노처녀라 불릴 법한 서른 한 살의 나이의 무게감 때문에 결혼 상대를 물색하려는 궁여지책일 수도 있겠다는데 생각이 미치니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늘날 연애 결혼이 일반화되면서 동반자적 관계, 일부일처제를 내면화한 부부가 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혼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충동적 이혼을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2008년 들어 이혼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이혼을 다시 고려해 보는 기회를 부여하는 이혼숙려제도의 기간을 늘려 도입했다. 이는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대해 합의하지 않은 경우 협의이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성숙한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적잖다. 이혼숙려제도는 개인적인 행복이나 독자적인 인격을 국가가 나서서 억압할 소지가 크다. 굳이 나라가 할 일을 찾자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일 공산이 큰 이혼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 봄직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결혼을 순수한 사랑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결혼의 문제는 대개 제도상의 결함으로 말미암는다고 봤다. 남자에게 결혼은 생활양식이지만 여자에게는 운명이라고 주장하며 결혼이 여자의 경제주권을 확보하는 기능을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결혼을 계기로 남녀 관계에서 여성의 수동화, 예속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을 염려했다. 또한 남편과 아이들의 굴레 안에서 자신의 자주성을 잃어버리고 권태에 시달리는 여성의 실태에 좀 더 주안점을 두었다. 그람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독립성과 부부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여성이 모성을 발현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기 영역을 마련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고 봤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스스로 원해서 간통을 했다면, 거기에는 자유의 한 단면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남녀평등을 확립하는 것이 간통을 사라지게 하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고 주창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결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행복한 삶을 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근본적 방책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혼자서도 윤택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면 이성 사이의 사랑이나 결혼이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고 원만하게 유지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요즘 법과 제도의 변화는 가부장제의 약화를 초래했다. 1990년대 들어 남녀차별을 시정하고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입법이 잇따랐다. 여성발전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하여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법도 제정됐다. 호주제와 제대군인가산점제도에 대한 위헌결정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우리 법 제도에는 아직 주부의 가사활동을 폄하하거나 여성의 사회활동을 방해하는 성차별 조항이 남아 있다. 국민·공무원·군인 연금법에서 유족연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 재혼하면 그 권리가 소멸한다고 규정한 것과 재산 등록 대상에서 '출가한 여자'는 제외시키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등이 그 사례다. 맥락은 다르지만 강간의 피해자를 여자로 한정해 동성 사이의 강간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 간의 획일적 성역할을 법제화한다며 피해자를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미비점을 메우기 위한 입법은 계속될 전망이다. 법조문상의 형식적 문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성역할을 해체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눅여나가는 장치로서 법의 역할이 촉구된다.


고종석의 『사십세』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야합에 의해 태어난 자식, 첩의 자식이라고 명명한다. 사생아라는 처지를 자괴하면서 가족과 부인에게 무책임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하다. 소설의 핵심 주제는 아니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 관계가 자식의 인격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불륜은 배우자의 피해 뿐만 아니라 자식의 고통을 야기하기 마련임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축첩과 같은 지속적인 간통으로 형성된 부자관계는 위태로웠고 가족 관계는 그다지 화목하지 못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자신의 육욕을 충족하려 했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결혼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외도를 저질렀다.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했음은 물론이고 자식들에게도 갈등의 씨앗을 남긴 폐해가 크다. 이처럼 간통 행위는 혼인 외 자녀 문제나 가족의 유기 문제 등을 낳는다. 형법 제241조는 법률상 혼인을 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자와 성관계를 가지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대부분 간통죄를 형사처벌하지 않는 대신 민사상 배상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1990년 김양균 헌법재판관이 간통죄에 대한 합헌결정에 반대하며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윤리 도덕을 지키는 주요 동기가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윤리의식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제시한 의견을 경청할 만하다. 간통한 배우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입법화 한다는 전제조건 아래 간통죄 폐지를 논의해 볼만 하다.


간통이 위헌이든 합헌이든 그것이 나쁜 행위이고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은 또렷하다. 간통죄를 세분화하고 중벌 규정을 완화하는 대체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 접근을 해볼 수 있다. 다만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양육비 지급에 관한 강제 조항을 보완하는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소설에서는 서자인 주인공이 아버지의 호적에 올랐다는 내용이 있는데 새로 시행되는 가족관계부는 다양한 가정 모습을 보듬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맞을지도 모른다. 만프레트 타이젠의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5천 종이 넘는 포유류 가운데 평생 같은 짝과 더불어 지내는 동물은 비버와 수달 등 약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섹스의 진화』에서는 대부분 포유동물의 새끼들은 젖을 떼자마자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는데 반해 인간의 아이는 혼자 먹고 살 수 있으려면 훨씬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성이 배란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지 남성과 성교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남성이 가족의 둥지에 머무르며 아이를 함께 양육하게 되고 이것이 일부일처제로 진화한 것이라는 주장이 흥미롭다.


현재의 결혼제도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잠정적으로 합의된 산물이라는 점에서 고정불변이라는 것은 기꺼이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인간이 연애 호르몬에 의해 전적으로 조종 당하는 존재가 아닌 한 혼인서약을 나눈 배우자에 대한 신의와 존중은 봉건윤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권장할 덕목이다. 한스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에서 재벌의 아내 마리안네는 작가 베르톨트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훌쩍 떠나버린다. 일견 지위와 명예를 버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해방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그러나 이는 소설적 구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거꾸로 마리안네가 가난한 남편을 버리고 부자에게 마음이 동했다면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남을 해쳐가며 탐닉하는 사랑에는 삼감이 필요하다. 내 욕망에 앞서 배우자를 배려하고 자녀가 받을 상처를 생각한다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품어야 할 미덕이다.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수 없다면 적절한 시기에 헤어질 수 있는 시대다. 그것이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앞으로도 개인의 선택과 다양한 애정관을 수용하도록 법제도가 개편되어야 한다. 법이 상당부분 비켜서야 할 것이다. 법이 물러난 자리에 사랑이 다 들어차기보다는 여백을 남겨둬야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무한하거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욕망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는 결혼제도를 더듬기는 어렵다. 박현욱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한다는 아찔한 상상력을 선보였다. 비독점적 다자연애(Polyamory)라고 멋지게 이름지어진 이러한 시도들을 우리는 어디까지 수긍할 수 있을까? 독점은 대개 나쁘지만 한 사람을 독점하려는 노력은 그래도 애틋하다. 일부일처제를 건사해왔던 정성들을 퉁명스럽게 내치지 못하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결혼을 무덤이라고 투덜거리면서 내심 근사한 후원으로 가꾸려고 무진 애쓰는 사람들을 두둔한다. 두 남자를 사랑한 아내는 끝내 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는 살면서 임자(?) 없는 매력적인 여남(女男)을 얼마나 많이 만나는가?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오은수는 한 사람을 선택하려고 고심하는 듯싶다. 은수는 세 남자와의 줄다리기 끝에 가장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꾸린다고 여겨지는 김영수와 결혼을 계획한다. 그녀는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반듯한 세계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였다”라며 자신의 결정을 치장하지만, “내 입으로 결혼이라는 말을 뱉은 뒤, 그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역설이 거기 있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은수가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거나 팔자를 고치려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득 보부아르의 언설이 떠오른다. 우리 둘레의 은수가 계산할 건 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 나누는 사랑에 충실하길 바란다. - [無棄]


<넋두리>
세상의 숨겨진 이치들을 이미 다 꿰뚫어 버린 것 같지만 실상 곰곰이 따져보면 내가 몸으로 직접 겪어낸 것은 별로 없었다. 아는 것과 겪는 것 사이에는 분명 엄청난 간격이 가로놓여 있다.
-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中

결혼은커녕 연애경험조차 일천한 나는 경험이 얕은 것은 기본이고, 지식조차 없다. 큰일이다.^^;

2008/06/15 02:06 2008/06/1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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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갯강구 2008/06/18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오빠도 이런 트랜디 드라마보시다니 놀라워요~
    저도 보고 싶긴한데 안테나를 안 설치해서..;;

    원작은 갠적으로 좀 실망이긴 한데,
    그래도 재밌다는 사람들 많고
    드라마로는 그럴듯한 연애이야기인다가
    인터넷에서 남녀로 나눠서 싸우기 좋은 소재가 많아서
    흥미롭네요..(그리고 지현우랑 이선균이 좋아요..ㅋㅋㅋ)

    소설도 읽어보셨나요?
    제 블로그에 후기가..ㅋㅋㅋㅋ
    그리고 레포트도 올려 놨습니다.
    끝에 삼천포로 빠지는거 같아서 고치려다가,
    고치기 귀찮아서 걍 올렸어요..

    • 익구 2008/06/23 0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글 잘 읽었다네. 나도 어렸을 때 문학소년이던 시절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완전 비문학청년이 되어버렸지 뭐야. <달콤한 나의 도시>는 방학을 이용해 읽어보고 싶더라고. 드라마도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와서 앞으로 챙겨볼 듯하구먼.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분량만큼 진보한다”거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같은 말씀들이 연상되는 이야기가 좋더라고. 기왕이면 권선징악에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전근대적인 스토리를 좋아하고 말이지. 그나저나 우리 희망의 무게를 더하는 여름방학을 만들어보자.^^

공자의 꿈

문화 2008/06/15 01:33

이번 학기 마지막 과제였던 <유가적 사유와 논어> 과제물을 부분 수정해서 올립니다. 이 과제를 작성하는 고뇌(?)를 나눠준 준 석훈이에게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원문>
子曰 老者 安之 朋友 信之 少者 懷之
- 『논어』 <위정편>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의 뜻은) 나이 많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며 친구에게 믿음을 주며 어린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니라.”


<견해>
  공자께서 제자인 자로, 안연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포부를 밝힌 문구다.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사회라고 볼 수 있고, 정책구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견 소박해 보이는 공자의 말씀에서 공자사상의 고갱이가 엿보인다. 『예기』 예운(禮運)편에서는 큰 도가 행해진 세상에서는 천하가 온 세상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 부모만을 부모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며, 노인에게는 그 생을 편안하게 마치게 하였으며, 청장년들은 능력을 충분히 활용했으며, 어린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대동사회(大同社會)가 제시되고 있다. 공자가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다지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방법으로 대동을 지향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1978년 덩샤오핑은 원바오(溫飽), 샤오캉(小康), 다퉁(大同) 사회라는 3단계 발전전략을 내놓았고 2050년까지 실현하겠다는 대동은 공산주의 이상향의 중국판이다. 기세춘 선생은 대동사회는 오히려 묵자가 서술한 안락하고 평화로운 공동체(安生生)와 맞닿는다고 보았는데 일리가 있다. 공자의 대동은 묵자와 실현방식이 달랐을 뿐더러 현세적이던 공자는 대동사회에 무게를 두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서양의 르네상스는 중세적 신정정치에서 탈피해 합리주의와 세속주의를 추구했다. 지상낙원을 사후의 천상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구현하자는 것이다. 공자는 서양의 르네상스보다 훨씬 앞서서 인간다움에 대한 풍부한 고찰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과 견주어 살펴봄직 하다. 칼 포퍼는 유토피아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점진적 사회공학을 주창한다. 이것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는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악은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로 악을 간접적으로 제거하려 생각하지 말고, 오늘의 희생을 쥐어 짜내기보다 지금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실현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 하기보다는 존재하는 것이 명백한 악, 피할 수 있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데 애쓰라는 것이며, 지금 여기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해야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경우 추상적 집단이 아닌 구체적 개인의 삶에 천착해 개인의 본성을 가꾸는 이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유가의 현실적인 구세의식이 도드라진다. 선생 또한 미래나 천상의 유토피아를 언급하지 않았다. 공자는 신과 거의 무관한 세계의 인본주의를 역설했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는 말씀 속에서 인도를 넓히고 실천하는 주체는 사람 자신이고, 그러한 능력을 개개인이 충분히 품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공자는 현실에 밀착한, 현실을 떠나지 않은, 현실로 발현할 수 있는 이상을 갈파한다. 이것은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치들이다. 仁은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평생을 추구하는 힘이 된다. 누구나 생각하고, 누구나 바라고,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것을 仁은 가리키고 있다.


  헤겔의 『법철학』 서설에는 “여기가 로도스섬이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장미꽃이 피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라는 구절이 있다. 어떤 거짓말쟁이가 자신이 로도스섬에 있을 때 굉장히 멀리 뛸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굳이 많은 증인이 필요 없지. 여기가 로도스야. 여기서 뛰어보게!” 헤겔은 이 우화를 미덥지 못한 이상을 늘어놓기보다 삶의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방안을 고찰하라는 것으로 풀었다. 진리라면 현실의 검증을 마다하지 말고, 로도스섬으로 피하기보다는 지금 딛고 있는 곳에서 가능성을 보이라는 설명이다. 헤겔의 언설은 환상의 나라, 허구의 나라, 불가능의 나라에 닿기 위해 헛되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공자의 주장과 잇닿아 있다. 공자는 로도스섬을 꾸며내지 않았다. 그저 老者와 朋友와 少者를 생각하는 오늘 여기의 삶을 로도스섬으로 삼았다.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경제 성장과 인간의 행복감 사이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선구적 학자다. 그는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같은 나라, 같은 지역의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보다 행복감도 커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 발견됐다. 또 한 나라 안에서 가난하던 시절과 부유한 시절을 비교해도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나라의 높은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가 그 나라 국민 전체를 더 행복하게 한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일정한 생활수준에 다다르면 경제 성장이 개인의 행복, 사회적 후생 증가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일컫는다. 공자는 이 역설을 오래 전부터 꿰뚫고 있었다. 공자는 물질을 부정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경시하지 않았다. 선생은 다만 욕망의 증가 속도가 부의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른 것을 염려했다.


  공자가 체감(遞減)하지 않고 체증(遞增)하는 탐욕을 문제 삼은 것은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물신숭배와 황금만능주의로 타락하기 일쑤다. 인간보다 물질이 무겁게 여겨지는 사회를 공자는 경계했다. 선생이 설파한 仁의 개념은 추상적으로 정의되기보다는 다채로운 실례와 비유 속에서 표현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사람을 사랑함(愛人), 널리 사람을 사랑하는 것(汎愛衆)이다. 오늘날 가치관의 전도 현상으로 말미암아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같은 목적적 가치보다 효율성과 편리성 그리고 경제적 부 같은 수단적 가치가 더 우월한 지위를 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병리현상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게 된다. 공자는 이것에 반대한다. 선생은 효제(孝悌)와 충서(忠恕)를 고안해 물질적 집착을 버리고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기를 촉구한다.


  孝悌가 혈연을 매개로 한 본능적 사랑이라면 忠恕는 이를 바탕으로 남에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인간관계를 목적적 관계로 확립함으로써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만들려는 기획이다. 세종대왕 때 박연이 시각장애 악공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하며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다(天下無棄人也)”라고 상소했던 내용의 바탕이 되는 사상이다. 『도덕경』 27장에 나오는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주고,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라는 구절과 상통한다. 왕필(王弼)은 주석을 통해 성인은 나아갈 것과 향할 것을 만들어서 진보에 뒤쳐지는 사람들을 못났다고 버리지 않으며, 저절로 그렇게 됨을 도와줄 뿐 새롭게 일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라고 풀이한다. 사람을 구제하기를 즐기며, 스스로의 편견 때문에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없는 태도라는 실천덕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현해나가야 하는 것인가? 孝悌가 忠恕로 확장되는 관계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 게 온당하다. 『맹자』에 나오는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다(見牛未見羊)”라는 구절이 이런 고심을 푸는 실마리가 된다. 제 둘레의 것들에 연민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더 먼 곳의 아픔을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양에 대해서도 똑같이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식의 관념적 사고에는 정(情)이 묻어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見牛未見羊에서 인간의 지각적 한계만을 논해서는 곤란하다. 나와 덜 친밀한 것까지 측은지심을 품는 실천을 꾀해야 한다. 측은지심을 자기 주변부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방점을 찍을 부분은 측은지심을 바지런히 넓히는 데 있다. 여기까지 동의한다고 해도 측은지심이 확산되는 순서가 명료한 선후관계는 아닐 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공자가 꿈꾼 바를 오늘날 접목시켜본다면서 단순히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노인 복지, 사회적 신뢰의 확립과 청소년 교육의 강화 같은 피상적인 접근으로는 부족하다. 공자와 그의 벗으로 상징되는 장년층이 노년세대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예우하고, 청소년세대를 정성껏 보살펴서 세대 간의 유대감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해석하면 실질적인 의미가 좀 더 커질 것이다. 즉 세대 간의 사랑과 배려를 돈독히 해서 문화와 역사를 계승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다. 젊음이나 늙음은 결국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역지사지한다면 세대 간의 허심탄회한 소통으로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응집력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老者와 朋友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논어 구절에서 익히 만날 수 있지만 少者를 품겠다, 포용하겠다는 언명은 이 구절에서 또렷하게 드러나 특히 인상 깊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해주고 싶다는 협소한 의미가 아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나 불치하문(不恥下問)에서 알 수 있듯이 윗사람으로서 어린 사람에게 시혜적이고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베풀겠다는 뜻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배우겠다는 의지의 피력이다. 최근 기업에서 관리자가 부하직원들에게 젊은 세대의 관심사와 노하우를 전수 받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이 강조되고 있다. 이를 통해 핵심가치를 공유하고 상호 만족감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공자의 가르침을 응용한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08/06/15 01:33 2008/06/1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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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최소한 언짢게 여기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한우도 위험하다 혹은 더 위험하다는 ‘한우 위험론’, 전경이 무슨 죄냐는 ‘전경 동정론’, 너무 감정적이고 선동적이라는 ‘군중심리론’, 그래도 불법은 안 된다는 ‘준법시위론’, 본래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순수 훼손론’, 쇠고기 협상만을 문제삼아야지 다른 정책이나 정부 퇴진을 외쳐서는 안 된다는 ‘쇠고기 국한론’, 집회로 인해 선량한 시민들의 이익이 침해받는다는 ‘선량한 시민론’, 시위에 참석 안 했다고 무뇌아로 몰아 부쳐서는 안 된다는 ‘계몽 반대론’, 재협상은 통상마찰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국익론’, 본래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했던 무리들이 문제를 부풀린다는 “안티 조장설” 따위가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은 안 했지만 대강 이해하시리라 본다. 몇 개는 쉽게 논파할 수 있지만 몇 개는 고민에 빠뜨린다.


특히 “물대포는 대한민국 폭력경찰이 쏘는 것이기도 하지만 권리를 침해당한 다른 선량한 국민들이 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내가 ‘선량한 시민론’이라 이름지은 주장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과연 선량한 시민이 침해받은 이익은 무엇일까요? 정부를 옹호할 권리? 이런 건 아닐 테고, 주말 저녁에 광화문 거리를 산보하는 여유? 한밤중에 숙면을 취할 자유?”라고 비꼬았다. 진의는 아니었지만 댓글 논쟁이 벌어진 곳이 익명게시판이라 직접 사과할 기회가 없어 안타깝다. 선량한 사람들이 빼앗겼다고 주장하고픈 권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적시해주시면 더 좋았다는 의도가 지나쳤다. 내가 든 예시는 경솔했지만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그런 표현을 쓴 측면이 있으니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홍관희 통일교육원장 내정자는 촛불 시위자들이 자동차 운전자들의 도로통행 권리, 심야에 숙면을 취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열거해줘야 토론하기가 좀 더 수월하다.


경찰이 ‘더’ 선량한 시민을 대신해 ‘덜’ 선량한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덜’ 선량한 시민들은 ‘더’ 선량한 시민을 향해 촛불을 든 것도 아닌데 물대포를 쏘아줘야 안심이 된다면 좀 민망하다. 그렇게 해서 유지되는 선량함이 그리 탐스럽지는 않다. 이를 주장한 분은 어떤 시민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다른 시민의 어떤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어느 정도 명료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경찰특공대가 지키려고 했던 건 청와대인가? ‘더’ 선량한 시민의 이익인가? 이명박과 그 둘레 사람들인가? ‘더’ 선량한 시민의 공민권과 행복추구권인가? 나는 헛갈린다. 결사의 자유라든가 불복종 운동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섬세한 논쟁이 필요한 대목인데, 구체적인 내용 없이 “침해받은 시민을 생각하라” 이렇게만 말씀한다면 난감하다.


짧은 댓글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를 내가 너무 타박하지는 않아 염려스럽다. 그럼에도 글쓴 분의 논지를 강화하려면 이런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가령 법을 준수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덕목이며 사회의 안정에 이바지해 궁극적으로 시민의 법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실정법에 어긋나는 가두시위가 적절치 않다고 볼 여지가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쇠고기 정국에서 정부의 태도를 지지하고 대통령을 옹호하는 국민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정부 VS 촛불집회 시민의 구도에서 혹시 소외될 수 있는 제3의 영역, 또 다른 우리 사회 구성원의 문제를 지적하신 건 좋은데 그 문제 제기가 좀 더 공감을 얻으려면 그에 걸맞은 근거가 조금 보강되었으면 좋겠다.


말씀하신 논리가 설득력을 더하려면 선량한 시민들의 범위가 좀 더 넓어져야겠다. 글 쓴 분은 사회적 소수파에 대해 넉넉한 시선을 보내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량한데도 경찰이 대신 물대포를 쏘아주기는커녕 사회적으로 소외 받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한다면 어떨까 싶다. 경찰이 보호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선량하다고 자부하는 시민들마저 나서서 손가락질하는 소수파의 목소리를 경청할 줄 아는 자세로 버려지는 사람, 버려지는 권리가 없기를 희망하시는 분이라고 믿는다. 이와 결부시켜 ‘전경 동정론’과 관련해서 한마디만 하자면 공권력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과 공권력 사용에는 늘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마냥 어긋나는 목표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민주 경찰과 민주 시민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번 촛불집회를 4·19나 5·18에 빗대는 것을 마뜩잖아 하시는 분들이 있다. 4·19나 5·18의 숭고한 대의를 높이기 위해 함부로 쓰이는 것을 경계하셔서 하신 말씀일 게다. 다만 그 기저에 흐르는 공통 분모를 뽑아내려는 시도가 그리 무익한 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4·19와 5·18은 소중한 기억이지만 그것이 관념화되고 신성시되는 건 곤란하다. 아마 우려하신 분께서도 생활 속에서 그 정신이 녹아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시리라 믿는다. 경험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마 그 때도 오늘과 같은 논쟁과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4·19는 반쪽이나마 성공함으로써 성역화되어 버렸고, 5·18은 불온시되어 제대로 음미할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4·19나 5·18의 의미를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헤아려보고 소통하려 하는 것이 4월 혁명, 5월 항쟁을 되새기는 또 다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정부가 거짓말을 남발하고 있다는 공통점은 확실히 있다.^^;


4·19와 5·18, 6월 항쟁을 지지한 시민도 그 때 당시에는 소수였다. 사안마다 다르지만 처음부터 전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은 건 아니다. 우리는 이 기억들이 어느 정도 성공한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의 의미를 기리고 마치 일부 집권층과 동조 세력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깎아 내리는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 과거 독재시절에 민주화를 위한 뚜렷한 명분이 있었다는 주장도 들린다. 그 때 그 시절에도 자칭 선량한 시민(?)들은 "그래 네 말이 맞는데 폭력시위는 안 된다" 뭐 이런 식에 가까웠다고 알고 있다. 더군다나 그 때는 빨갱이 사냥까지 있었고, 언론의 왜곡보도도 심대했다. 우리가 자랑하는 그 민주화도 애당초 용인되었기에 실현된 것이 아니다. 감정에 휩쓸려 제 앞가림을 못하고 과격한 언사를 늘어놓았던 그들이 우리가 지금 대통령을 마음껏 욕하고, 언론 보도를 의심하고, 군사주의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아마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국민의 손으로 뽑았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의 상황이 당시의 정세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핵심 논거다. 분명 무력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견주어 정통성이 월등히 높다. 좀 야박하게 말해서 이명박 정부의 무능함을 꿰뚫어본 국민이 적었다는 것이 대한민국 불행의 시발점이었는도 모른다. 이번 정권교체에서 보여주듯이 민심은 변하게 마련이다. 그 민심이 다시금 요동쳤다고 해서 군중심리라거나 조변석개(朝變夕改)라고 투덜거리는 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나눠봄직한 주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둘레 사람들이 그런 말을 꺼내서는 곤란하다. “고객은 무조건 옳습니다”라고 써 붙인 식당처럼 국민의 올바름을 믿는 것은 직선 대표의 숙명이다. CEO 대통령이라면서 식당 주인만도 못한 정치를 펼친다면 부끄럽지 않은가.


2004년에 내가 통상정책 발표 주제로 삼기도 했던 EC-호르몬사건(EC Measures Concerning Meat and Meat Products)은 유명한 통상마찰 사례다. 미국은 WTO에 제소를 했고 WTO는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EU(당시 EC)의 거부와 잇따른 미국의 제소가 이어져 지금도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고 EU는 각종 대가를 치르면서도 버티고 있다. 이것만 봐도 통상마찰은 괴롭고 지루한 여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번 쇠고기 협상이 전격적으로 채결되기 전까지 많은 줄다리기가 있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온전히 져야한다. 그들은 소 잃고 고칠 외양간마저 불살라 버렸다. 나는 쇠고기 협상 타결 초기에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던 정부 관료와 여당 의원들의 작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 그 과오를 만회할 길은 단 하나 뿐이다. 이게 과연 흑백논리이자 이분법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시 철회, 협상 무효”라는 국민의 요구는 간명하다. 현 시점에서는 이걸 수용하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통상마찰이 걱정되더라도 재협상 불가가 국익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지금 야당들이 장외집회로 선회하고 있지만 한나라당도 재협상(에 준하는 조치)을 사실상 수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회에서 의결하면 못할 것도 없다. 사실 의회 입법으로 정부의 빠져나올 알리바이를 만드는 방식은 미국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통상마찰을 우려한 국익론은 마치 지난날 이라크 파병 국익론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현혹하는 구호에 소모될 공산이 크다고 본다.


타격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이 두려워 다른 방식을 모색한 단계는 지난 게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한미 FTA나 대운하 같은 경우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을 찬반 양측이 엄청난 차이로 계산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나타날 통상마찰에 따른 피해를 경제학적 수치로 계산해서 결정하겠다는 것도 어폐가 있을 듯싶다. 기업비리가 터질 때마다 재계에서 경제사범에 대한 선처를 요구하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핑계를 늘어놓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궁색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원하는 건 두둑한 지갑만은 아니다. - [無棄]

2008/06/07 18:53 2008/06/0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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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정국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사실 나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굳이 머리를 굴려본 것이 있다면 ‘위험(Risk)’과 ‘불확실성(Uncertainty)’의 개념이다.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위험은 측정 가능한 불확실성입니다. 즉 확률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입니다. 최근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위험이라기보다 불확실성의 문제였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일단 거래를 사절하거나 자금을 회수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자금 융통이 막혀 금융위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형국인 셈이다. 요즘 불거지는 광우병 논란도 위험이라기보다 불확실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정부는 안전하다며 위험 측면에서만 해명하고 불확실성을 다독일 방안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응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나이트(F.Knight)는 불확실성이야말로 이윤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라고 역설했다. 보험 처리조차 불가능한 진짜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사람이 기업가이며, 사전 통제가 불가능한 위험을 지는 대가로 기업에는 이윤이 발생한다는 논리를 편다. 아직까지는 미국 쇠고기를 들여오는 이득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정부측의 초기 대응은 안이하기만 했다. 쇠고기 협상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성의한 태도는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자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제 정신인 민주정부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굴욕적인 협상을 하고도 국민들이 괴담에 놀아나네, 촛불집회에 배후가 있네 어쩌고 하면서 깐죽거리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문제의 본질이다. 이명박 정부는 불확실하지 않다. 그들은 위험할 따름이다. 그건 측정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


정부의 거짓말과 실책이 쌓여 정책의 신뢰성이 추락했다. 그간 광우병의 위험을 함께 호들갑 떨던 이들이 갑자기 새 정부 들어 협상을 불가피하다고 외치는 것을 넘어 옹호하고 있는 모습은 불신을 부채질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는데 자율규제 하겠다, 원산지 표기 잘하겠다는 말이 믿어지겠는가. 물론 정부가 국민의 생명권을 희생해가면서 미국에 굽실거렸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손익계산서는 분명 극악한 것이었고 그나마 나온 추가적인 조치도 국민들의 분개 때문에 겨우 이루어졌다. 국민은 정부가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호들갑을 떠는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런데 그네들은 국민이 호들갑을 떤다고 나무랐다. 전전긍긍해야 할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정부가 되었어야 마땅하다.


도덕적 자원을 결핍한 지도자는 ‘비지지자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유무형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은 그 비용이 크리라 추정된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는 지지도 폭락 사태는 낮은 신뢰도에 기인했다기보다는 빠른 속도로 늘어난 비지지자 수인지도 모르겠다. 섣부른 판단이지만 지지자 충성도가 붕괴될 조짐이 보인다. 비지지자의 낮은 신뢰도를 방어하는 건 지지자의 높은 충성도다. 혹자들은 군중심리라고 타박할지 모르겠으나 이명박 정부는 많은 기대를 품고 출범했다. 설령 이해관계에 의한 투표를 건넸다고 하더라고 그와 같은 지지를 건넨 국민들에게 손가락질하는 정부라니 서글프다.


경찰이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에게 최초로 물대포를 쏘았다는 기사를 접하고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명박 정부의 탄생을 저지하려 했던 편파적인 녀석이다. 이 점을 부인하지도 않고 감추지도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물대포 사태가 벌어지던 날 헌책방에서 노닥거리다가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편파적으로 공정한 것이 가장 편파적인 것이다”라는 구절을 만나고 무척 동감했다. 나는 아직 공정하게 편파적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편파적으로 공정하지는 않았던 듯싶다. 공정한 척하지 않는 건 내 자부심이다. 그저 이명박 정부를 막지 못한 죄를 감내하고 하루하루 견뎌내는 재미로 살려고 했는데 이쯤 되면 죗값에 견주어 너무 많은 벌을 받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속한 반 클럽에는 쇠고기 정국에 대한 논란이 불붙고 있다. 나는 고종석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이명박 정부의 업적이 있다면 적어도 공적 영역에서는 무능과 부패, 도덕성과 능력은 정(正)의 상관관계에 있음을 온몸으로 실천해 보여준 것이 아닐까”라고 썼다(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늘 떠들고 다니던 말을 고 선생님이 먼저 글로 옮기신 것이지만^^;). 어느 누리꾼이 요즘의 일을 풍자하며 인용한 최치원 선생의 <토황소격문>의 구절을 재인용했다. “하늘이 잠깐 나쁜 자를 도와주는 것은 그에게 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쌓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天之假助不善 非祚之也 厚其凶惡而降之罰).”


그 때 당시에는 나도 흥분했고(한편으로는 엄청 절제했지만) 감정의 나열에 불과해서 며칠 뒤에 지웠다. 이제 재학생 가운데는 꽤 높은 학번이 되어버린 제가 스스럼없이 툭 던진 한 마디가 어떤 맥락으로 받아들여질지를 고민해야 했는데 좀 소홀했다. 내 잡소리를 누가 귀담아 듣겠냐 싶지만 내 진솔함이 후배들에게는 불편함을 심어줄 수도 있겠다는 반성을 했다. 사석에서든 클럽 게시판 같은 공적인 지면에서든 가능하면 솔직하게 살려고 했는데 때로는 솔직함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예전부터 몇몇 선배님들은 내 ‘감춤 없음’을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다. 정말 고맙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렇다고 갈등의 소지가 있거나 가치관이 맞부딪치는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는 문제의식을 품어본다. 좋은 이야기와 인사치레 같은 덕담을 늘어놓으면 우리의 소중한 관계가 너무 허망할 거 같다. 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는 의만 상하기 때문에 친구 사이에서 꺼내지 않는 게 좋다는 식의 이야기에 별로 동감하지 않는다. 그건 귀한 인연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배신’이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익명게시판은 백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는데 정작 오프라인 상에서는 수강신청 이야기나 나누는 우리네 우애를 돌아보게 된다. 왜 우리는 이런 소재를 두고 오프라인 상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할까. 서로 덜 친해서 그런 걸까, 더 친하고 싶어서 그런 걸까?


우리가 좀 더 격의 없는 사이가 된다면 오프라인에서도 이런 이야기 술안주 삼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대학에서 내가 사귄 사람들을 위한 생각일지 내 개인적인 욕심인지는 잘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불완전성을 가정한 제도다. 관용은 “내가 잘 났으니까 너희들 이야기를 좀 들어줄게”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존재와 가능성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는 것이다. 진리는 권력순도, 성적순도, 목소리 크기순도 아니다. 부디 내 둘레의 사람들과 관용의 미덕을 만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뒷담화 대신 앞에서 말하기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내가 내뱉는 만큼 얼마나 잘 경청할 수 있을까? - [無棄]

2008/06/07 18:52 2008/06/0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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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행사 가운데 고대타임(고대생들이 으레 늦게 모이는 습속을 애정을 섞어 표현한 말)이 적용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행사가 입학식이다. 2002년 입학식 때 나는 대강 이 때쯤이면 되겠다 싶어 어슬렁거리며 입학식장이던 노천극장을 올라갔다. 30분도 늦지 않았는데 벌써 교가를 부르고 있었다.^^; 1978년 당시 김상협 총장님은 ‘여기에서 춤추어라’는 입학식사를 하셨다. “여기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민족주체 민간주체의 석탑의 광장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지성과 야성, 한국과 세계의 캠퍼스가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는 헤겔의 『법철학』 서설의 표현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여기가 로도스섬이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장미꽃이 피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라고 썼다.


그런데 이건 또 이솝 우화를 인용한 것이다. 어떤 거짓말쟁이가 자신이 로도스섬에 있을 때 굉장히 멀리 뛸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굳이 많은 증인이 필요 없지. 여기가 로도스야. 여기서 뛰어보게(Hic Rhodos, Hic Saltus)!” 헤겔은 이 우화를 미덥지 못한 이상을 늘어놓기보다 삶의 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라는 것으로 풀었다. 진리라면 현실의 검증을 마다하지 말고, 로도스섬으로 피하기보다는 지금 딛고 있는 곳에서 가능성을 보이라는 설명이다. 차병직 변호사님은 헤겔의 언설을 환상의 나라, 허구의 나라, 불가능의 나라에 닿기 위해 헛되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보셨다. 축제의 계절인 오월에 음미해볼 만한 이야기 같아 많이 인용했다.


지난 5월 16일에 열렸던 대동제 주점은 즐거웠다. 재미난 시간은 빨리 가서 아쉽다. 주점이 있는 날 밤은 더 후다닥 지나간다. 처음처럼이 없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빈자리를 소중한 사람들이 채워주셔서 얼마나 흥겨웠는지 모른다. 재현형님, 상준형님, 인호형님, 윤승형님, 광호형님, 정훈형님, 혜진누님 등의 선배님들 바쁜 시간 내주셔서 왕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바지런히 부침개와 만두를 굽고 감자를 튀기고, 오도독뼈를 익히고 달걀을 깨고, 과일 통조림을 조합하던 후배님들 모두 고생 많았어요. 주점 마치고 뒷정리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는데 묵묵히 남아 정리했을 여러 후배님들 사랑해요. 해장국은 들고 귀가했나 모르겠네요.


오월에 이어진 각종 술자리에서 숙취 없이 선방한 날도 있고, 주말 내내 뒹굴 거리며 요양했던 날도 있다. 술을 잘 못 마시면서도 술자리를 좋아하는 저는 아찔했던 경험도 적잖았지만 “술은 언제나 무죄다”라는 구호 아래 다음 술자리를 기획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현진건 선생님은 「술 권하는 사회」에서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상황을 술로 달래는 광경을 묘사했다. 하지만 술은 어떤 명분이나 핑계로 치장해 마시는 행동은 마뜩찮다. 우애로움이 술잔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술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술은 그냥 술로써 좋아해야 한다고 우겨본다.


술자리에는 부분 강화 효과(Partial Reinforcement Effect)가 있는 것이 아닐까 궁리했다. 부분 강화 효과란 보상이 언제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 오래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주로 게임이나 도박의 사례를 많이 든다. 즉 추억으로 삼을 만한 성공적인 술자리가 언제 도래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끊지 못하는 증상이랄까?^^; 맹자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어질지 못한 것을 좋아하는 행태를 비판하며 마치 “취하기는 싫어하면서도 무리하게 술을 마시는 것(惡醉而强酒)”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비유가 따갑다.


애주가들이 물아일체를 패러디 해 주아일체(酒我一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나는 ‘주간(酒間)’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좀 과장을 보태면 내 삶은 술자리와 술자리 사이에 끼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모자란 체력과 부족한 정신력이 용납하는 순간까지는 숙취를 애인처럼 여기며 지내볼 계획이다. 음주의 한계비용과 한계수입이 같아지는 균형점은 당최 어디에 있을까? 다음 술자리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해 또 알차게 살아봐야겠다. 잠시 술잔을 내려놓은 시간 동안 모두들 안녕히!^-^ - [無棄]

2008/06/07 18:52 2008/06/0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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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대하여(2)

사회 2008/06/02 03:43

3. 처벌의 강도와 지속도, 그리고 확률

  베카리아는 사형을 논하며 형벌의 강도보다 지속도가 더 큰 범죄 억지효과를 낳는다고 봤다. 이와 더불어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106쪽)”라고 목청을 높인다. 형벌이 비록 온건하더라도 확실하기만 하다면 충분한 억제효과를 발휘하며 “형벌이 잔혹해질수록 범죄자는 그 처벌을 피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107쪽)”라고 역설한다. 법경제학에서는 처벌의 강도와 지속도의 관계에 대한 연구보다는 처벌의 확률과 강도가 범죄의 빈도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처벌의 확률과 강도가 범죄의 빈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사회학자들은 합법적 분야의 취업시 소득수준, 반사회적 성향 정도와 같이 처벌의 확률과 강도를 제외한 기타 변수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본다. 양자택일의 문제라기보다는 복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베카리아가 그런 주장을 내놓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인권이나 생명권에 대한 저변이 넓어진 시대적 분위기도 한 몫을 담당했으리라 추정된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비교적 낮았던 이전 시대에는 사형의 강도가 지금보다는 세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의 종류를 다양화하여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십자가형이나 능지처참 같은 좀 더 잔혹한 사형을 부과함으로써 처벌의 강도를 높이려고 했다. 그러나 베카리아가 살던 시대에는 사형의 강도가 이전보다는 크게 계산되었기에 사형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할 사유의 여백이 생겼다. 여담이지만 서양의 중세에는 처벌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처벌을 하기로 했다. 중세에는 독살자를 가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처벌을 강화해 기름으로 삶는 형벌에 처했다고 한다. 19세기 미국 서부에서는 말 도둑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고 19세기 이전의 영국에서는 조직화된 경찰력이 없어서 처벌 확률이 낮기 때문에 그리 중하지 않은 범죄에도 사형이 남발되었다(Richard A. Posner 저, 정기화 역, 『법경제학 (상)』, 자유기업원, 2003. 참조).


  1968년 베커(G. Becker)는 처벌확률에 반응하는 탄력성이 처벌강도에 반응하는 탄력성보다 크다는 것을 증명하고 처벌의 강도를 높이고 확률을 낮추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1980년 위트(A. Witte)의 연구 결과를 보면 과거에 높은 처벌의 강도와 처벌의 확률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사회복귀 후 상대적으로 새로운 범죄를 덜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한 범죄의 경우에는 범죄를 줄이는 데 처벌의 강도가 처벌의 확률보다 더 영향력이 크고, 반면에 경한 범죄의 경우에는 처벌의 확률이 처벌의 강도보다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범죄유형을 종합해 보면 처벌의 확률, 즉 처벌의 확실성이 처벌의 강도보다 범죄 억지력이 있다고 나왔다. 1983년 마이어(S. Myers)의 연구에서는 처벌의 확실성보다 처벌의 강도가 범죄 억지력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1991년에 발표한 그로거(J. Grogger)의 연구는 처벌의 확실성은 범죄억지에 명확히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나, 처벌의 강도는 그 영향력이 대단히 미미하여 통계적 유의성도 없음을 보이고 있다. 학계에 지배적인 합의는 없으나 최근에 처벌의 강도보다 처벌의 확실성을 보다 강조하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박세일, 『법경제학』, 박영사, 2000. 407~413쪽 참조).


  베카리아가 강조한 처벌의 지속도라는 개념은 포스너(R. Posner)에게 공박 당할 소지가 있다. 포스너는 범죄자의 시간 할인율이 상당하다면 추가된 수감 기간은 그만큼의 고통을 가져다주지 못함을 간단한 계산으로 보여줬다. 할인율이 5%일 경우 10년의 형량은 1년 형량의 7.7배이고, 20년 형량은 12.5배 정도의 기간으로 느껴진다. 할인율이 10%로 늘어나면 10년 형량은 6.1배, 20년 형량은 8.5배에 그친다. 이 때문에 그는 범죄자의 시간 할인율이 상당히 높다면 사형은 극도의 중죄에 대해 불가피한 처벌 방법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의 말대로 범죄자의 현재시간 선호도 혹은 현재소득 선호도가 높아서 10년 징역과 20년 징역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경우 범죄 억지효과를 높이지도 못할뿐더러 국가적으로는 큰 처벌비용만 지출한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측정하기 까다로운 시간 할인율이나 현재시간 선호도를 놓고 사형의 필요성을 논하기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지만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건 분명하다. 베카리아는 경제분석에 처음으로 수학을 이용한 저술로도 유명한데 이러한 시간 개념을 인지했기 때문에 형벌을 받는 자보다는 보는 사람에게 더욱 공포심을 심어준다고 설파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 국민이 사형과 종신형(혹은 무기징역)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따져볼 가치가 있다.


4.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에 대한 논쟁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를 놓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진다.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이 형무소 생활에 비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다. 만약 죽음을 형무소 생활보다 가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때는 사형이 살인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러한 가정이 성립할 때 비로소 사형이 억지효과를 지닌다. 사형과 살인율 사이의 경험적, 실증적 연구가 적잖았다. 사형제가 살인에 대한 억지효과를 지니는지 여부에 대한 많은 경험적 연구는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 준다. 억지효과를 지지하는 분석에서부터 억지효과는커녕 베카리아의 주장처럼 사형제로 말미암아 오히려 범죄가 더 흉포해진다는 추론도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최근 신뢰나 협력 같은 사회자본의 긍정적 효과를 조명한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독립변수인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 결과는 모호하다.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사회자본이 형성될 여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사회자본은 경제발전의 상호변수이거나 심지어 종속변수일 가능성도 있다.


  사형제와 범죄 억지효과를 탐구할 때도 이런 애매함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셀린(T. Sellin)은 사형의 존재가 살인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범죄 억지효과를 가진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셀린은 사형제도가 있는 주와 있지 않은 주의 살인율, 사형제도가 있는 주와 있지 않은 주의 경찰관 살인율, 그리고 사형이 폐지되었거나 부활된 관할의 살인율을 각각 비교했다. 이 결과 사형제도가 있는 주의 평균 살인율이 없는 주의 살인율보다 높았으며 사형이 경찰관의 살인율을 낮게 하는 상관성도 없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형제의 폐지와 부활에서도 부활이 살인율 감소와 일관되게 연관성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셀린의 연구 설계가 정치하고 세련되지는 못했으나 사형 반대론자에게는 광범위하게 수용된 경향이 있다. 이 밖에 멕케(D. Mckee)와 세즈노비츠(M. Sesnowitz)이 구성한 살인과 형사사법체계의 상호작용모델에서도 범죄 억지가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기브스(T. Gibbs)는 처벌의 확실성과 가혹성이 살인율과 역으로 관계하는데 이 중 처벌의 확실성이 처벌의 가혹성보다 살인율에 아주 강하게 관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티틀(C. Tittle)은 처벌의 확실성과 범죄간의 관계가 역관계에 있고, 처벌의 가혹성과 범죄간의 관계에는 정관계에 있음을 발견했다(살인은 예외). 기브스와 티틀은 사형의 억지효과를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처벌의 범죄 억지가설을 지지하고 있다. 에리히(I. Ehrlich)의 분석에 따르면 검거?체포확률, 체포에 의한 유죄결정확률, 유죄결정에 의한 집행의 확률 순으로 억지변수와 역관계가 나타났다. 살인율과 이 세 가지 변수간의 관계는 통계적 유의미성을 지녔으며 사형 또한 살인에 억지효과를 지닌다는 결론이었다. 억지효과를 수치로 제시한 경우도 있는데 울핀(K Wolpin)은 사형 한 단위의 집행이 네 단위만큼의 살인수를 줄이게 된다고 보았으며, 융커(J. Yunker)는 한 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156명의 살인을 억지 시킨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이상안, 『범죄경제학』, 박영사, 1999. 150~165쪽 참조).


  이러한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의 분석 대신 직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통계 결과도 다채롭다. 캐나다는 살인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직전인 1975년의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이 3.09명이었는데, 2001년에는 1.78명으로 줄어들었다. 1975년에 비해서 43% 감소한 셈이다. 한편 영국은 1965년 사형제를 폐지했는데 이후 20년 동안 살인 범죄가 60% 증가했다. 더욱이 이 기간 동안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살인의 비율이 72:28에서 59:41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형의 위험이 없어져서 치밀한 계산 하에 자행되는 살인이 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에서 흉악 범죄가 증가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치안 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이지 사형제 폐지가 독립변수가 되어 범죄율을 낮춘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도출된다. 하지만 대체로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많은 듯싶다. 유엔이 실시한 1988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사형제를 폐지하더라도 범죄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추측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사형제도가 종신형에 비하여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여 년간 미국의 사형 존치주와 폐지주 사이의 살인범죄율 비교 결과 사형 존치주의 인구 10만 명당 평균 살인범죄율은 5.3명으로 폐지주의 2.8명에 비해 높았다.


  이 밖에도 사형이 종신형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기존의 인식을 비판하며 사형을 종신형으로 바꾸면 상당 액수의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처럼 법경제학의 분석틀을 이용해 사형제를 헤집어보려는 시도는 안개 속을 거니는 기분을 자아낸다. 마치 산발적으로 보도되는 의학 관련 기사들의 종합하면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혼란상과 비슷하다. 다만 사형제가 윤리적, 법리적 문제로만 접근하기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부딪치는 문제임을 짐작케 해준다. 앞으로 법경제학 등의 실증적 연구가 정교해져서 억제효과에 대해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형 존치론과 폐지론은 몇 가지 통계 수치로 결판날 사안은 아니다. 사형제는 상대적 찬반보다 절대적 찬반의 비율이 여느 사회적 다툼보다 크다는 점도 사안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사형의 위하효과가 너무 작다고 해도 존치론자들의 정의에 대한 열망을 쉽게 눅이지는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형의 억제효과가 무척 크다고 해도 폐지론자들의 인류애를 헝클어뜨리기는 힘들다. 양측의 화해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는 사회적 합의를 더디게 만든다.


5. 그래도 사형을 폐지하자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2007년 말까지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지정했다. 2008년 초의 집계를 볼 때 세계적으로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는 133개국이다. 법적으로 폐지된 나라는 102개국,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폐지국이 된 나라가 우리를 비롯해 31개국이다.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 마지막 사형집행이 있었던 1997년까지 사형이 집행된 사람의 수는 총 902명이라고 한다. 이 통계는 일반법원의 사형선고와 집행에 관한 통계로서 군사법원의 사형선고와 집행에 관한 통계는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는 58명의 사형수가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사형수 6명에 대해서 무기수로 감형하는 특별사면을 단행해 64명에서 줄었다.


  순천대 김인선 교수 등이 1987년부터 1997년까지 101명의 사형집행 현황을 분석해 발표한 “우리나라 사형집행 현황과 사형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저학력자, 무직, 육체노동 종사자일수록 사형 집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별로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자가 40명(39.6%)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중졸 30명(28%), 고졸 25명(24.75%), 무학 6명(5.94%)이었다. 대졸 이상 학력은 한 명도 없었다. 직업별로는 무직이 63명(62.3%)으로 가장 많았고, 노동 7명, 농업 5명, 운전기사 5명, 상업 4명 등이었고 회사원은 3명에 그쳤다. 단순히 이 숫자만 가지고 우리 사회의 낮은 계층에게 사형이 집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사회의 혜택을 가장 못 받은 이들에게 법률이 유독 냉엄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15대, 16대, 17대 국회에서 계속 사형제 폐지특별법안을 제출됐다. 세 법안의 제안 이유는 거의 비슷하지만 사형을 대체하는 형벌의 내용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날 뿐이다. 2004년 12월에 여야 국회의원 175명의 이름으로 제출된 법안에는 가석방이나 감형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절대적 종신형의 문제점도 있으나 국민적 불안감을 눅이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서의 효용성은 수긍할 만하다. 2008년 3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5백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사형제가 존속돼야 한다”라고 답해 22.2%의 “폐지돼야 한다”라는 주장보다 많았다. 존속 45.1%, 폐지 33.8%였던 2006년 조사에 견주어 사형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해사건과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흉악 범죄에 대한 국민의 불안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사료된다.


  이러한 여론에다 사형 존치론을 지지하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 18대 국회의 원내 구성을 되새길 때 사형제 폐지를 위한 입법적 노력이 주춤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18대 국회에서 사형 폐지법안이 제출되고 국회 차원의 토론이 이어지길 희망한다. 1981년 프랑스는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되자 미테랑과 사회당의 결단에 의해 집권 2개월만에 전격적으로 사형폐지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률안이 통과될 당시 국민여론은 오히려 62%(혹은 66%) 정도가 사형을 지지하고 있었다. 사형폐지입법계획안을 제출했던 당시 법무장관 로베르 바뎅테르(Robert Badinter)는 “의회는 그 나라의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며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올바른 입법을 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지 절대로 민주주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200년에 걸친 프랑스 사형 폐지론의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경우 여론은 사형폐지에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폐지론자들은 여론에 끌려 다니지 않았고 입법이 여론을 선도한 프랑스의 사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홍기원, “프랑스 사형폐지론의 역사”, 『법과 사회』 제23호, 법과사회이론학회, 2002. 참조). 우리 행정부와 입법부가 당장 용단을 내리리라 상상하기는 어렵다. 영국이 치안상태 개선과 무관하게 정치적 결단에 따라 폐지했기 때문에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거니와 사형제 폐지의 여파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보니 국민의 법감정을 들어 시기상조론에 나오기 일쑤다. 1972년 사형제를 폐지했다가 흉악범이 는다는 이유로 1976년 부활시킨 미국의 전례를 볼 때 한국에서 1977년 16개 국가가 ‘사형에 무조건 반대한다’며 채택했던 스톡홀름 선언(Declaration of Stockholm)과 같은 방식의 급진적인 폐지는 실현성이 떨어진다.


  다카노 가즈아키(高野和明)의 사회파 추리소설 『13계단』에서는 사형제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을 던진다. 특히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형량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풍자하며 제도의 맹점을 파고든다. 스콧 터로(Scott Turow)는 『극단의 형벌』이라는 저서에서 사형이 지향하고자 하는 도덕적 균형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사형수의 운명이 일관되고 사리에 맞게 처리되기보다는 우연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네들이 고발하고자 한 것은 베카리아도 내세운바 있는 인간의 불완전성 및 오류가능성이다. 내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까닭은 지난날 국가나 정의라는 이름으로 앗아간 무고한 목숨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형제 폐지가 사회적 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라든가 인권 국가로서의 상징성을 드높인다는 점보다 인명에 대한 연민과 부끄러움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사형은 무결하지 못한 인간이 넘지 말아야할-겸손이 그은-선 밖에 두어야 한다.


  끝으로 용서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에게 어머니와 아내, 아들을 잃은 고정원님은 범인을 용서하고 사형제 폐지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유영철을 죽인다고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죽음이 하나 늘어나는 것일 뿐이라는 고정원님의 말씀이 가슴을 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모습은 훌륭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관용이나 용서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다. 평생 상처를 안고 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강제해서는 안 되고, 관용을 강요할 수도 없다. 나는 모든 피해자가 고정원님과 같은 삶을 살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은 사형수의 참회만 묘사하지 않고 피해 가족의 고통을 대비시켰다. 이 정도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살인 피해자 유가족들과 가해자인 사형수 가족들이 모여 함께 교감을 나누는 “희망여행”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우리는 이런 움직임이 드물다. 흉악 범죄가 터질 때마다 범죄자의 응징에만 관심을 쏟을 뿐 피해자들의 괴로움을 다독이려는 사회적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음을 반성해야 한다.

2008/06/02 03:43 2008/06/02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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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대하여(1)

사회 2008/06/02 03:36

<들어가며>

지난 4월 30일에 이번 학기 듣는 <문학 속의 법> 강의에서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 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그 날까지 내는 과제물을 밤늦게까지 작성하고 난 후에 새벽부터 비로소 부랴부랴 발표 준비를 하다 보니 빼먹은 부분도 있고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부분도 적잖았다. 물론 맨 정신이라고 더 나아질 것은 없었다는 핀잔을 지극히 타당하지만.^^;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발표 초안을 보강해 잡글을 하나 만들어 강의 커뮤니티에 올렸다.


대개 비슷하겠지만 사형제라는 소재는 존폐론이나 현황을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을 부연하는 식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좀 더 색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딱히 묘안은 없었다. 그래서 법경제학에서 논하는 실증적 연구를 좀 찾아봤는데 별무신통이다. 완결적인 글이라기보다는 이번 발표를 준비하며 찾아본 자료를 짜깁기하고 내 멋대로 편집한 결과물을 공유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올린다. 분량이 제법 되는 관계로 어느 분이 읽을까 싶지만 요약 정리를 하면 더 혼란스러울 듯싶어서 크게 다듬지는 않았다.


그간 당위론적으로 막연하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해온 것은 아닌가 스스로 자괴감이 들어서 작심하고 사형제 존치론의 주장을 경청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술한 저서 같은 건 찾기 어려웠지만 산재한 자료들에서 사형제 존치론자들 역시 인간의 존엄성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무지 타협의 접점이 보이지 않는 사형제 존폐논쟁에서 서로의 거리감을 좁히는 방안이 무엇이 있을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긴 듯하다. 사형제를 ‘비율’과 ‘조합’의 문제로 다가가는 것이 온당할까 머뭇거리다가도, 그렇다고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택하는 문제도 아닌 것 같아 어지럽다. 좀 더 궁리해봐야겠다.


사형제를 소재로 삼은 작품 가운데 통속 추리소설이지만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은 우선 재미나니까 권해드리고 싶다. 문학 작품은 아니고 논픽션이지만 스콧 터로의 『극단의 형벌』도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영화를 도통 보지 않는 나이지만 학교의 DVD 시설을 이용해 사형을 소재로 한 영화 5편을 관람했다. <데이비드 게일>, <데드맨 워킹>, <나는 살고 싶다>, <그린 마일>, <어둠 속의 댄서>가 그것인데 사형수의 고통을 주로 삼았다는 내용상의 협소함은 있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사형의 의미를 조망하고 있었다. 4월 마지막 주에 간행된 시사주간지 <시사IN> 32호에서 사형을 특집 기사로 다룬 것도 참조하시면 좋겠다.


문득 조지 오웰의 「교수형」의 한 구절인 “한 정신이 줄어들면 그만큼 한 세상이 좁아진다”가 떠오른다.


1. 베카리아와 『범죄와 형벌』


  1738년에 태어난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로서 근대 형법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1764년 베카리아가 26세에 쓴 『범죄와 형벌』이라는 책에서 사형제 폐지를 최초로 주장한 사상가로 이름을 남긴다.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그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처럼 체계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역설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베카리아를 맨 앞자리에 두는 것은 온당하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829년에 발표한 『사형수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 서문에서 “66년 전 베카리아가 만든 틈새를 최선을 다해 넓힐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베카리아의 논설은 그 뒤로 이어진 사형 폐지론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당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대체로 사형에 반대했다. 그런데 이네들이 사형을 반대하는 근거는 도덕이나 신학적 논리에 기대기보다 사회계약론과 형벌의 유용성 또는 범죄의 예방가능성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베카리아의 목소리를 좀 들어보도록 하자(이하 Cesare Beccaria 저, 한인섭 역, 『범죄와 형벌』, 박영사, 2006. 인용).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형벌 및 그 집행의 수단은 범죄와 형벌 간의 비례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정신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수형자의 신체에는 가장 적은 고통을 주어야 한다(49쪽).


  베카리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형벌을 바라본다. “쾌락과 고통은 감각을 부여받은 존재에 있어 행동의 유일한 동인(動因)(30쪽)”이라고 생각해 인간 행위의 원동력을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로 보고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형법을 구현할 것을 주문했다. 베카리아는 “범죄자가 형벌을 통해 받은 해악이 범죄로부터 얻는 이익을 넘어서는 정도(108쪽)”의 형벌이면 충분하다고 논술했다. 범죄만이 사회적 악이 아니라 비례성을 잃은 처벌도 사회의 악임을 지적하는 탁견을 선보인다. 죄질에 견주어 처벌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울 경우 범죄 예방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형제를 당위론적 측면에서 간단히 주장하기보다는 한결같은 논지 위에서 사형이 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떨어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