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선거 전날 자정에 이르러서야 뽑을 사람을 간신히 정했다. 생애 첫 대선이다 보니 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보수파(혹은 극우파)가 나란히 1위, 2위하는 건 차마 못 볼 거 같아서 평소 공언하던 바와는 다르게 찍었다. 결선투표가 없는 현 제도상 2위 이하 후보들의 단일화 논의나 유권자들의 사표 방지 심리는 수긍할 만한 점이 많다. 97년, 02년 대선을 곱씹어보면 개혁세력이 분열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개혁세력이 단독 집권한 경우는 아직 없다고 볼 수 있다(02년 대선 당시 정몽준 후보를 개혁세력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선거에서 질 줄 알면서도 출마하는 사람이 있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유지된다지만 모든 사표(死票)는 서글프다. 당최 대선 결선투표는 언제까지 도입 안 하고 버틸 참인가?
2.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서울 지역 평균 득표율은 53.2%였다. 타워팰리스 주민들이 투표한 도곡2동 4투표소의 득표율은 86.4%로 서울 최고였다. 2632표 가운데 이명박 후보가 2274표를 얻었고, 정동영 후보는 88표(3.3%)를 얻었다. 이 당선자는 강남구(66.4%), 서초구(64.4%), 송파구(57.8%)에서 득표율이 높았다. 이를 두고 2007 대선을 이익투표로 보는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강남 주민들은 이전부터도 일관되게 한나라당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 주민들의 투철한 계급의식은 흉볼 게 아니라 배울 점이 아닐까 싶다. 칭찬이 없는 우리 사회에 이 분들을 좀 조명하면 어떨까.
사실 참여정부는 서민들에게는 구박받을 짓을 했을지언정 타워팰리스 주민들에게 죽을죄를 지은 건 거의 없다. 종합부동산세가 있다지만 그 분들의 집 값을 무진장 올려주었던 게 누구였단 말인가. 고작 종부세 때문에 이런 투표행위를 보였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이 당선자에게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추론해 봄직하다. 이쯤 되면 이 당선자는 대통령에서 거국적인 로또로 승화된다.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기대이익률이 높은 이명박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제 소중한 한 표를 아낌없이 던졌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계급 구성원들이 자신의 객관적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를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라고 개념 정의했다. 강남북에 고루 퍼져 사는 그 많던 서민은 어디로 갔을까? 실용월드로?
3.
니체는 노예의 도덕과 주인의 도덕을 설파했다. 노예의 도덕은 자신의 처지가 갑갑하고, 삶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열등감에 대한 방어기제를 일컫는다. 가령 어쩔 수 없는 기다림은 인내로 포장하고, 복수하지 못하는 무력감을 복수하지 않는 선(善)으로 조작하는 경우를 말한다. 아Q가 즐겨 쓴 현실 속의 패배를 머릿속에서 승리인 것처럼 전환하는 정신승리법과 비슷하다. 이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진중권 선생은 노예는 원한과 증오만을 알 뿐 스스로 긍정적인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고 오직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세우기 때문에 “그들은 나쁘다. 고로 나는 선하다”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선생은 이어 주인의 도덕은 “나는 선하다. 고로 그들은 악하다”라고 말하며 긍정적인 가치의 창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후보의 열성 지지자들이야 마땅히 주인의 도덕을 뽐내셨을 게다. 내 또래에 그 비중은 얼마나 될까? 노예라는 말은 너무 어감이 좋지 않아 함부로 쓰기 힘들다. 시혜적 평등밖에 갈구하지 못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식객(食客)의 도덕이라는 말을 써보면 어떨까? 식객이라는 만화와 영화 덕분에 이미지가 많이 순화됐지만 본래 뜻은 얹혀 사는 처지를 가리킨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어떤 종이 다른 종의 배설물이나 먹이 찌꺼기를 먹는 현상을 식객현상이라고 지칭한다니 또 다시 망설여진다. 이 말도 버리면 무슨 단어가 있을까나?
4.
노무현 때문에 졌단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님들은 남 탓을 참 잘한다. 12월 17일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보수파(한나라당)에서 개가 후보로 나와도 당선될 것(conservatives could put up a dog and still win)이라는 조롱을 농담이라며 실었다. 스스로를 욕되게 한 다음에야 남으로부터 모욕을 받는다고 했다. 노 대통령과 친노파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희생제의를 벌이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정동영 후보와 그 일파가 자책하는 모습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황당한 일이다. 그네들 또한 노무현을 욕하면서 닮아버렸나 보다. 이 분들은 성공보다 실패로부터 많이 배운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실책과 오류로부터 얻는 지식을 일컫는 부정적 지식(negative knowledge)을 공유하지 않으면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리라.
물론 친노파가 마냥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네들은 참여정부 계승파를 자임하기보다는 노 대통령과의 연줄로 금배지를 단 사람들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세상을 다 가질 것처럼 휘젓고 다니기도 잘하더니 몸을 사리는 재주도 일품이다. 어중이떠중이 친노파가 되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똑똑한 분들이다. 담담하게 참여정부와 명운을 함께 하려는 몸짓이 있었다면 이렇게 마냥 동네북이 되지는 않았을 듯싶다. 그네들이 죄 이상의 벌을 받는 건 안쓰럽지만 섣불리 동정이 가지 않는 이유다. 당신들은 권력의 떡고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끝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사에서 지지자에 대한 사과 말씀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한때 바보 노무현을 지지해서 행복했던 사람들을 향한 진실한 참회 한마디 듣고 싶다. 사과를 구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5.
이명박 당선자의 성향을 놓고 신보수라느니, 실용주의라느니 말들이 많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를 놓고 보수의 분화라며 호들갑이 적잖았다. 이념 성향을 이야기하려면 참여정부를 어떻게 보느냐를 먼저 정리해야 할 듯싶다. 노 대통령 스스로는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칭했지만 제 입맛에 맞게 극우파를 제외한 모든 정파를 갖다 붙이고 있다. 좌파라고도 하고, 우파라고도 하며, 온건(혹은 중도) 보수라거나, (민주)개혁세력, 개혁적(혹은 중도) 자유주의라고도 한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한국에서 좌파라는 표현은 억압적인 언어가 되고 때로는 폭력성을 띠기도 하기 때문에 여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 또한 동감한다. 아무리 봐도 참여정부가 좌파는 아닌 듯싶다.
한나라당-대통합민주신당-민주노동당을 보수-개혁-진보라거나 보수우파-(개혁적) 자유주의-진보좌파라고 많이들 부르는 듯싶다. 참여정부나 통합신당이 개혁이라는 레토릭으로 불리는 데 대해 혐오하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하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참여정부를 개혁정부로 부르지 않기는 어렵다. 통합신당과 민노당이 진보개혁세력으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것도 마뜩잖아 하는 분도 많지만. 아마 이런 용어의 혼란은 앞으로 더 심화될 모양이다. 새로운 진보와 보수를 내세울 문국현 후보와 창조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신당은 어디에 위치할까. 정명(正名)하기가 참 어렵다. 탈이념이니 탈정치니 이야기 하지만 그것 또한 이념이고 정치임에는 틀림없다.
6.
12월 11일~12일 SBS와 중앙일보, 동아시아연구원이 실시한 패널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 지지자 중 후보 선택에 있어서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1.5%였다. 11월에 있었던 YTN-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이 후보의 도덕성을 보고 지지한다는 의견은 1.6%였다. 이명박 당선자가 얼마나 유능하냐의 논란은 둘째 치고라도 도덕성이 능력과 분리되어 평가할 수 있다는 주장이 무척 우려스럽다. 나는 선거기간 내내 도덕과 능력은 별개라는 주장을 극복하고 싶었다. 나는 도덕성이 곧 능력이라고 호기롭게 말했고 ‘도덕력’이라는 개념을 설파하기도 했다. 도덕은 부패가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느니, 유능하다는 말속에는 이미 부패하지 않다는 뜻이 있다는 등의 주장과 상통한다. 물론 이렇게 도덕성을 적극적으로 파악하는 게 적절한가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부도덕하면서 유능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해낼 자신이 없다.
이번 대선이 윤리 대신 경제를 선택한 선거라 해석하면 너무 위태롭다. 이제 한바탕 선거가 끝났으니 좀 촘촘한 체를 들이대 봤으면 좋겠다. 윤리와 경제가 양자택일할 성질이 아니라는 점은 또렷하다. 윤리를 내팽개칠 거 아니잖는가? 부패는 약자의 적이다. 공직자 청렴도를 높이고 땅에 떨어진 사회 각층의 신뢰도를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를 살린다는데 747 공약을 넘어선 구체적 지표가 필요할 듯하다. 참여정부의 분배정책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있어야 한다. 감세를 하고도 복지를 늘리는 화수분이 있는지도 보다 명확한 해답이 있어야겠다. 보다 근본적으로 ‘모두’를 위한 성장을 추구하기는 하는 건지 궁금하다. “1.5%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릴까? 남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없는 떳떳함이라는 개인적인 미덕이 너무 소멸되는 게 안타깝다. 그래도 나는 몰상식하게도(!) 개인 윤리의 각성이 확산되길 바라는 꿍꿍이짓을 한다.
7.
대선 전주에 이명박 지지자가 단 한 명도 없던 술자리가 있었다. 나는 이명박 지지자들이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에 빠진 거 같다며 독설을 날렸다.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가 주창한 이론으로 양립 불가능한 인지요소가 있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결정에 배치되는 증거나 정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쓰는 자기합리화라는 말을 떠올리면 쉽다. 자기 태도와 행동 사이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편함을 없애서 일관된 삶을 꾸리려는 노력이다. 태도에 행동을 맞추기보다는 행동에 태도를 바꾸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이른바 노빠라 불렸던 노무현 열성 지지자들이 인지부조화에 빠졌다는 비판이 많았다. 과연 명빠는 인지부조화의 유혹을 걷어낼 수 있을까?
그런데 열성 지지자 없는 민주주의가 가능하기는 할까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지의 선진 민주주의 정당들에서도 골수 당원들이 있지 않는가. 낙후된 정당 민주주의 때문에 정당보다는 인물 중심으로만 열성 지지자들이 형성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열성 지지자는 비판적 지지자에 비해 미숙하고 사려 깊지 못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얼마나 초라했을까. 물론 모든 맹신과 중독은 해롭다. 하지만 투기와 투자가 헛갈리듯이 광신과 확신, 홀림과 신바람 역시 애매하기 마련이다. 명빠들과 덜 데면데면하기 위해 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8.
사실 12월 19일 저녁에는 술을 좀 마실 계획이었다. 2007 대선을 기념(?)하며 꽤 오래 전부터 잡아둔 일정이었다. 어찌 어찌 모임을 만들었는데 소주 반병 마시고 못 마시겠다 싶어서 자리를 일찍 파했다. 술은 달콤할 때 마셔야 한다는 철칙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나는 홧술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세밑 내내 어느 분들은 축배를 들고, 어느 분들은 고배를 들겠지만 모두들 숙취 없으시길.^^
그나저나 오미자차를 약 삼아 복용하며 잊혀진 미각을 되살려야겠다. 자발적 가난이라는 명제가 짠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자발적인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다만 그 자발성이 정말로 자신의 뜻한 바인지는 좀 더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인간은 자주 자신의 통제력을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력과 구조적 모순이 작용해서 선택한 대안을 자신의 골랐다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나의 금주는 분명 비자발적이다. 나는 자발적 음주를 위해 미감을 회복해야 한다.
9.
『소학』에 “좋은 사람이 없다(無好人)라는 세 글자는 덕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無好人三字 非有德者之言也)”라는 구절이 가슴에 사무친다. 나 같은 무지렁이가 무호인(無好人)을 입에 담고 나보다 백만 배는 나은 분들의 험담을 내뱉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최저의 이명박이 최고의 최익구보다 빼어남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선거라는 제도는 나 같은 범부들이 자기보다 빼어난 사람을 왈가왈부할 수 있는 권한을 쥐어줬다. 나는 이 권리를 좀 더 절제해서 행사할 계획이다.
10.
나는 본래 모진 사람이 아니다. 나라고 왜 사사로이는 대학 선배인 분의 편에 서서 칭찬하고 응원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분명 애교심의 발로에서 이명박 후보의 과반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구의 애교심이 더 유익할지는 좀 더 두고볼 일이다. 나는 내가 틀리기를 바란다. 내가 이명박 당선자와 내 둘레의 이명박 지자자들께 드리는 최상의 덕담이다.
11.
어쨌든 정권교체다. 나는 적어도 지난날의 한나라당처럼 대통령을 저주하거나 무턱대고 발목을 잡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나라당이 현 정부에게 들이댔던 그 아름답고 가파른 잣대는 잘 기억했다가 다시 돌려드려야겠지만. 이제 대한민국도 기품 있는 야당 지지자가 많이 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인 보수 우경화 바람이 불더라도 내 소신을 건사하고, 사회적 가치의 독점(가령 시장독재)을 막아내는데 내 미력이나마 보태길 희망한다.
12.
올해는 송년회(送年會)보다는 망년회(忘年會)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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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상황이 우리와 비슷한게 매우 재미있더군요...전 강하게 믿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릴 것이란 것을..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전망이 매우 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기에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고 역설했던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케인즈는 장기적으로 경제가 균형에 이른다고 낙관하던 고전학파 경제학자를 비판하기 위해 이 발언을 했죠. 맥락은 다르지만 좀 차용하자면 장기적인 평안을 위해서 단기적인 처방을 궁리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말만 쉽지만요.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