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진보정당에 투표했다. 지역구 투표는 민주노동당 후보에, 비례대표 투표는 진보신당에 내 소중한 한 표를 건넸다. 일당독재를 막기 위해서 제1야당의 의석수가 어느 정도 나와야 하는 절박한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강금실 전 장관님의 애절한 호소가 마음이 아프지만 이번에는 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 동네 사정도 딱하지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진보정당이 새 국회에 없다면 더 슬플 거 같아서 진보정당에게 제 표를 나누기로 했다. 간밤에 꿈자리도 불편했다. 내 예감대로 투표장을 나서며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이처럼 골수 우파인지 몰랐다.^^;
개표 결과를 보니 술맛은커녕 밥맛도 잃을 판이다. 내가 본래 홧술은 싫어하니까 안 마시면 그만이지만 곡기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개운치 않은 마음은 기권한 홀가분함에 견주어 훨씬 숭고하다. 새 국회에서 유시민, 심상정, 김근태, 노회찬, 임종인, 한명숙 같은 분들을 뵐 수 없다는 생각에 속이 쓰리다. 국회의원 한 사람 앞에 들어가는 세금이 1년에 22억원이라는데 이 세금이 아깝지 않은 분들이 적잖았는데 아쉽다. 강기갑 후보의 당선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생채기가 너무 크게 나버렸다. 차마 한나라당을 찍지 않으신 분들께 충심으로 위로를 건넨다. 이 압도적 독점에 동참하지 않으신 결단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건사하는데 보탬이 되리라 믿는다.
만인의 예상대로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압승을 거뒀다. 나는 한나라당에 대해 좀 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내 둘레에 하고많은 한나라당의 지지자들과 얼굴 붉히지 않으려고 했던 건 내 너그러움을 뽐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소통을 포기한 것에 불과했으니까. 박노해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각은 모난데 행동은 둥근 나였다. 당장 소통이 되지는 않겠지만 필요한 논쟁에는 몸 사리지 않을 계획이다. 한나라당을 불의(不義)한 정당으로 보면서 그 정당의 지지자나 당원 가운데 괜찮은 사람을 고르려고 쏟았던 정성도 이제 그치는 게 좋겠다. 이 압도적 독점에 능동적으로 동참한 분들을 존경할 만큼 내가 넉넉하지 못한 탓이다. 부디 내 지인들 가운데 이 막장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분이 적길 바란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에게 패한 존 케리는 패배 연설에서 “미국의 선거에서 패자는 없습니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자의 당선과 낙선에 관계없이 다음날 아침에는 우리 모두가 미국인으로 눈을 뜨기 때문입니다(But in an American election, there are no losers. Because whether or not our candidates are successful, the next morning we all wake up as Americans.)”라고 말했다. 하지만 퉁퉁 부은 눈으로 등교하면서 하나의 대한민국을 도무지 가늠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서민배우의 아들이라고 뽐내던(?) 홍정욱에 열광한 사람들과, 위대한 강북 우파의 시대를 열겠다는 요설을 늘어놓는 신지호에 호응한 사람들과, 최연희나 이인제를 내치지 못한 사람들과 하나가 되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패자에게 승복을 요구할 수는 있어도 관용을 강요하지는 말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반한나라당 세력의 선거 연합을 찾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수도권에서 박빙으로 다투는 후보를 위한 전략적 선거 연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했으나 제대로 이룬 것은 없다. 떨어질 줄 알면서도 나오는 후보가 있어야 정당 민주주의가 존속한다. 하지만 정당은 기본적으로 집권을 목표로 한다. 수권 정당이라면 승패에 마냥 초연할 수는 없다. 반한나라당 색채의 야당들이 선거 연합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차마 한나라당을 찍지 않은 유권자들의 귀중한 의지를 사표로 만드는 죄악이다. 소신 있는 소수파는 아름답지만 다수파가 되려는 열의가 없다면 끔찍하다. 한나라당을 끝내 찍지 않는 유권자들은 앞으로도 제 정치적 의사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설움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4년 전에 비해 후퇴했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뽑는 선거구가 많았던 04년 총선과 달리 유권자들의 참여는 여론조사 반영이 전부였다. 통합민주당은 영남에 후보를 내는 것조차 버거워하며 전국정당이 되길 포기했다. 물론 최철국, 조경태 후보의 당선은 놀라운 일이며 대구·경북·울산 세 곳을 뺀 13개 시도에서 당선자를 낸 선전은 평가할 만하다.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선동하는 한나라당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는 더 굳건해졌고, 충청권도 지역 바람이 분다. 지역주의는 한국 정치의 강고한 상수(常數)임이 다시금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성찰이 긴요하다. 여기다가 친박연대라는 치욕스런 이름의 정당이 비례대표 투표 3위를 차지했다. 남 탓할 생각 없다. 이 지경이 되기까지 막지 못한 내 책임이다.
나 같은 일개 유권자야 다른 유권자에게 좀 투덜거릴 수도 있지만 유권자의 선택을 구하는 후보자들은 그런 자세를 품어서는 곤란하다. 패장들은 우선 살뜰한 낙선사례를 건네고 가능한 우아하게 물러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당신의 낙선을 함께 탄식했던 지지자를 생각해서라도 너무 흐트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플 컴퓨터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한 졸업 축사에서 스스로 창업한 회사에서 동업자와의 갈등으로 해고되는 수모를 겪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애플에서 해고당한 사건이 자기 인생에서 일어났던 최고의 사건이라고 술회했다. 성공이라는 부담감을 벗고 홀가분하게 초심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고, 인생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그 낙천성에 경애를 표한다. 그는 11년 만에 애플로 돌아와 지금도 맹활약 중이다.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매우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 ”라는 구절에 대해 북송(北宋)의 유학자 정이천은 “배움이라는 것은 장차 그것으로써 행하려고 하는 바이다(學者 將以行之也)”라는 주석을 달았다. 간명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나는 앞으로도 배운 대로 살기 위해, 생각한 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나는 당최 뭘 보고 배웠기에 아직까지 한나라당을 거들떠보고 있지 않는 것일까? 하기야 이건 내가 맞는다고 한나라당이 그른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닐 게다. 오랜 세월을 두고 재야하는 비율과 조합의 싸움이다. 자 이제 독점은 필연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깎아먹는다는 경제원론 시간에 배운 내용을 확인하는 길만 남았다.^^; - [無棄]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끊임없이 상상하고 계획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추진할 것이다.
- 김근태, 『희망은 힘이 세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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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에 선거방송을 보면서 술잔을 들고있는 동거인을 나무랐더니,
왈, 너는 이 상황에 술생각이 안나냐?
언제부턴가 정치나 가치관의 문제로 얼굴붉히는 일을 안하려고
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소통을 거부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아예 나 혼자서도 그 문제자체를 거론하지 않는것 같은
머리나 가슴속에서 지워버린것 같은 느낌.
하하 저는 술맛을 잃어서 큰일이에요. 정윤님께서 예전에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사석에서 하지 않는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얼굴 붉히는 경우가 많아서 저어하게 되는 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친한 친구와 종부세를 놓고 언쟁을 벌이다가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언짢았던 기억 같은 경험들을 돌이켜 보면 자꾸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자기검열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제 견해를 늘어놓는 것을 삼간다면 그건 지인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배신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문득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서 소통을 포기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소통을 안 하면서 제가 품고 있는 생각이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 상심을 치유하는 힘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좀 더 두리번거려 봐야겠어요. 다들 뵙고 싶네요. 얼른 뵐게요.^0^
아, 얘길 다 못했네.
19일날 못 나온다고?.
날짜가 변경될지 그냥 진행할지는 모르겠지만
시험 잘보슈.
다음 기회가 또 있겠지 뭐
맞아요. 늘 그런생각을 하지요. 근데 좋은게 좋은거라는거에 물들어서 싫은 일을 안하려고 하는 거지요. 기분 언짢아지는 것이 싫어서.
건투. 나중에 봅시다.